[취재수첩] 중견기업들의 '세무조사 스트레스'
“이번 같은 세무조사를 다시 받으라면 차라리 사업을 접겠습니다.”

최근 다섯 달 동안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중견기업인 A씨는 “올해 같은 세무조사는 사업 20여년 만에 처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에서 제조업을 하는 그의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선 2월 말부터다. 20여명의 세무서 직원들이 돌아가며 회사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협조하지 않으면 아예 회사 문을 닫게 해주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A씨는 “기업인을 무슨 죄인 취급하듯 몰아붙이는데,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이 나라에서 사업을 계속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중견기업인 B씨는 “세무조사를 나온다는데, 아예 몇억원 정도 더 낼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무서마다 할당액이 정해졌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일단 조사가 시작되면 피할 길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나라살림을 위한 정상적인 행정 활동이다. 세무조사를 자주하는 것, 세게 하는 것 자체를 놓고 뭐라고 토를 달기 힘들다. 돈을 많이 버는데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강화돼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기업인들도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세무조사에 대해 기업인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은 ‘정당한 과세행정을 넘어서는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기업인 C씨는 “복지다 뭐다 해서 대통령 선거공약을 지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세무조사를 통해 무리하게 돈을 걷으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기업 규모가 적당히 크지만 세무조사에 대한 대비가 잘 안 된 중견기업들이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인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세청의 상반기 조사(6400여건) 대상 중 상당수가 중견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여론을 감안한 듯 국세청은 최근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과 건설 조선 해운 등 경기민감 업종에 대한 세무조사를 줄이고 대재산가와 고소득 자영업자, 역외탈세자 등을 집중 조사하겠다고 하반기 세정운용방향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 기업단체 관계자는 “하반기에도 부족한 세수를 메꾸기 위해 업계를 저인망으로 훑듯이 할 것이라는 걱정이 여전히 많다”며 “국세청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기업인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진 중소기업부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