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김성곤 "'실패 면허' 내준 이장한 회장의 전폭적 지원이 큰 힘 됐어요"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은 일종의 실패면허(license to fail)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성곤 종근당 효종연구소장(51)은 “신약 연구의 가장 큰 적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며 독특한 종근당의 연구 문화를 이같이 설명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종근당의 종합신약연구소 효종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는 김 소장은 이달 초 20호 국산신약으로 등록한 당뇨병치료제 ‘듀비에정’의 연구개발을 총괄해왔다.

종근당은 2003년 자체 신약 항암제 ‘캄토벨’을 개발한 데 이어 10년 만에 자체 2호 신약개발에 성공했다. 보통 신약개발에 15년 이상이 걸리는 제약산업의 속성상 10년 만에 자체 신약을 내놓은 것은 상대적으로 ‘빠른 템포’에 해당한다.

김 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못지않게 이장한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연구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너가 직접 나서 ‘신약은 나의 자존심이다’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라’며 적극 지원해주는 회사는 많지 않다”며 “회사의 재정적 지원을 오히려 연구진들이 못 따라가 갈 정도”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서강대 화학과 석사를 마친 뒤 퍼듀대 화학박사와 하버드대 연구 후 박사과정을 거쳐 다국적제약사 MSD 본사에서 12년간 근무했다. 그가 종근당행을 결심한 데는 이 회장의 이 같은 신약에 대한 열정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실제로 종근당은 최근 3~4년 내 국내 제약사 가운데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제약사로 꼽힌다. 국내 상위제약사 평균 매출 대비 연구비 비중이 7% 내외인 데 비해 종근당은 매출의 12~13%를 꾸준히 투자해오고 있다.

20호 국산신약 듀비에정도 개발 도중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완주’할 수 있었던 것도 ‘실패를 두려워 말고 가보자’는 분위기 덕분이었다. 글리타존계열 당뇨병치료제는 2005년 다국적제약사 GSK의 제품에서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다른 경쟁제품인 일본 다케다의 제품에서는 장기복용시 방광에 무리를 야기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김 소장은 “한창 연구개발 단계에서 같은 계열인 GSK 제품에서 부작용 지적이 나왔을 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며 “기존 두 제품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모두 없애느라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2000년 개발에 들어간 듀비에정이 13년간 소요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중대 고비 때마다 김 소장과 연구원들은 ‘과연 이 약을 우리 가족에게 먹일 수 있을까’ ‘내가 평생 먹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왔다.

김 소장은 “당뇨병약은 평생 먹기 때문에 단기간에 무리하게 혈당을 내리는 것보다 내 몸에 있는 인슐린을 제대로 사용해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효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며 “두 가지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자신있는 신약”이라고 강조했다.

듀비에정은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체내 장기의 인슐린 감수성이 떨어져 인슐린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제2 당뇨환자에게 적합하다.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주기 때문에 췌장의 수명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다. 종근당은 5000억원 규모인 국내 당뇨병 시장에서 듀비에정 발매 첫해인 내년 목표를 100억원으로 잡고 있다. 김 소장은 “토종 신약을 대형 품목으로 키워 국산 신약의 자존심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종근당은 이와 별도로 현재 미국 유럽 등 서구의 고도비만환자를 겨냥한 글로벌신약 ‘732’의 2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김 소장은 “732는 세계 10대 개발 신약에 꼽힐 정도로 비전이 있는 신약”이라며 “종근당이 해외에 직접 수출하는 첫 번째 글로벌 신약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