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의 공격적 본능은 스스로에게 거짓말 시킨다?
블루길이라는 민물고기 수컷 중에는 암컷처럼 행동하는 녀석이 있다. 수컷의 구애를 유도하면서 주변을 맴돌다가는 암컷이 알을 낳을 때 재빨리 다가가 수정시킨다. 벌레처럼 생긴 신체 부위를 흔들어서 먹이를 꾀어 잡아먹는 물고기도 있다. 이들은 기만술이 간파되면 또 다른 기만술을 만들어낸다.

동물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는 “세균부터 동식물, 인간까지 생명의 모든 수준에서 기만이 일어난다”며 “기만술과 간파술의 반복교차가 진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에서 그는 “남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속인다는 점에서 인간의 기만은 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며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를 속이는 이유와 그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핀다.

그에 따르면 학자들의 94%가 자기 분야에서 상위 절반에 속한다고 확신한다. 미국 고교생의 80% 이상은 자신의 리더십이 상위 절반에 속한다고 믿는다. 실제보다 자신이 더 도덕적이고 더 매력적이며 남에게 더 이익을 준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좀 행실이 나빴지만 최근에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 의식이 뇌에 전달된 정보를 왜곡하고 거짓 기억을 만들면서 부도덕한 행위조차 합리화하는 것이 자기기만이다. 왜 그럴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좋은 의식은 살리고 나쁜 생각은 지움으로써 더 행복해지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화생물학 전공인 그의 분석은 다르다. 단지 기분을 좋게 하려는 방어적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공격적 본능의 방편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의 표현이나 과시적인 행동, 과잉통제 등이 그렇다.

자기를 기만할 때 누구나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는데 이런 ‘인지 부하’는 신체반응으로도 나타난다고 한다. 가령 거짓말을 할 때는 눈 깜박임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이런 부담을 덜고 거짓말 징후를 숨기기 위해 자기기만을 활용한다고 한다.

문제는 남과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얻는 혜택이 작은 데다 잘못하면 치명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도 나보다 타인이나 사회가 더 많이 입는다. 동물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몸을 부풀리는 것처럼 자신을 과대포장하다 보면 엉뚱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이나 대형 항공기 추락 등 사고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기만의 진짜 원인을 파악한 뒤 과신과 무의식을 피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신과 무의식은 저마다 위험하다. 게다가 둘이 결합되면 더 치명적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