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다중 복합 위험사회의 종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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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가 낯설지 않은 위험한 환경
설마 하는 생각에 파국 맞을 수도
범국가적 비상대비 계획 시급해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설마 하는 생각에 파국 맞을 수도
범국가적 비상대비 계획 시급해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장마와 폭우, 홍수와 가뭄, 폭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여름을 고통의 계절로 몰아붙였다. 무려 50여일을 끈 장마는 이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머지않아 태풍도 올 것이고 또 다른 폭우의 계절이 이어질 것이다.
자연재해가 없는 나라는 없다. 나라마다 자연과 지리 조건에 따라 양상이 다르고 정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재난방지 및 대응 체제와 역량에 따라 영향과 피해 규모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일본 동북부 지진과 쓰나미에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단연 충격이었다. 그 한 방으로 일본은 그동안 쌓은 자랑스러운 ‘안전 강국’ 성적표를 다 까먹었다. 그리고 의식 저 아래로부터 엄습하는 또 다른 공포, 이 모든 일이 기후변화의 결과여서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감은,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여름, 머리를 쭈뼛하게 만드는 납량특집의 압권이다.
비단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교통사고로 매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건설공사 등 각종 작업장에서 사고와 피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로, 교량, 터널 등 사회기반시설 결함으로 인한 사고도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단골기사들이다. 최근에는 구미 불산 누출사고 같은 대형 환경오염사고가 이어져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사고들은 보통 인적 재해로 분류되는데,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면 방지할 수 있는 재해라는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 제로를 자랑하는 작업장은 있을지 몰라도, 인적 재해가 없는 나라는 생각하기 어렵다. 인적 재해도 완벽한 예측이나 예방이 어렵다. 자연재해와 결합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재해의 원인이 자연이냐 인간이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 발생 빈도,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사실 대규모 재해 가능성은 도처에 상존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화학산업 국가로 손꼽힌다. 여수산단, 대산산단 등 20~30년이 넘은 화학산업단지가 많고 울산 미포산단처럼 조성된 지 50년이 넘은 경우도 있다. 시설 노후화에 따른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시설 노후화에 따른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주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불산이나 염산 누출사고로 화학사고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정도 생겼겠지만 유사시 시나리오를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이들 산업단지가 수반하는 잠재적 위험은 여전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후쿠시마처럼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와 부주의, 실수 등으로 인한 원전사고가 결합돼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일 것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구며 확산된 ‘후쿠시마 괴담’은 그야말로 대부분이 사실무근의 루머지만 유의할 점이 없진 않다. 독일의 공영방송 ZDF가 제작, 방영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은 ‘안전 일본’의 신화를 여지없이 붕괴시킨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이니 납품 비리 관련 소식을 안일하게 들어 넘긴다. 설마 우리에게 그런 파국적 재앙이 닥치지는 않겠지 하며.
아무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 대한민국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자연재해는 늘 예정돼 있고 기후변화로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아무리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도 어느 시점, 어느 골목에 이르러 피할 수 없는 재난과 사고 위험에 맞닥뜨릴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안전한가. 누가 어떻게 안전을 보장해줄 것인가. 말로만 읊어대는 안전구호가 아니라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안전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나. 기후변화대책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이제 백년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범국가적 차원에서 대한민국 전반에 대한 안전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50년 이상의 개발역사를 써왔고 그만큼 노후한 기반구조와 시설이 많아 잠재적 위험이 높은 다중 복합 위험사회가 됐다. 이 모든 잠재적 위험인자들을 미리 진단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로 사고 가능성과 위험을 평가해 대책을 강구해놓는 범국가적 비상대비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
자연재해가 없는 나라는 없다. 나라마다 자연과 지리 조건에 따라 양상이 다르고 정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재난방지 및 대응 체제와 역량에 따라 영향과 피해 규모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일본 동북부 지진과 쓰나미에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단연 충격이었다. 그 한 방으로 일본은 그동안 쌓은 자랑스러운 ‘안전 강국’ 성적표를 다 까먹었다. 그리고 의식 저 아래로부터 엄습하는 또 다른 공포, 이 모든 일이 기후변화의 결과여서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감은,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여름, 머리를 쭈뼛하게 만드는 납량특집의 압권이다.
비단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교통사고로 매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건설공사 등 각종 작업장에서 사고와 피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로, 교량, 터널 등 사회기반시설 결함으로 인한 사고도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단골기사들이다. 최근에는 구미 불산 누출사고 같은 대형 환경오염사고가 이어져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사고들은 보통 인적 재해로 분류되는데,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면 방지할 수 있는 재해라는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 제로를 자랑하는 작업장은 있을지 몰라도, 인적 재해가 없는 나라는 생각하기 어렵다. 인적 재해도 완벽한 예측이나 예방이 어렵다. 자연재해와 결합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재해의 원인이 자연이냐 인간이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 발생 빈도,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사실 대규모 재해 가능성은 도처에 상존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화학산업 국가로 손꼽힌다. 여수산단, 대산산단 등 20~30년이 넘은 화학산업단지가 많고 울산 미포산단처럼 조성된 지 50년이 넘은 경우도 있다. 시설 노후화에 따른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시설 노후화에 따른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주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불산이나 염산 누출사고로 화학사고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정도 생겼겠지만 유사시 시나리오를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이들 산업단지가 수반하는 잠재적 위험은 여전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후쿠시마처럼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와 부주의, 실수 등으로 인한 원전사고가 결합돼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일 것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구며 확산된 ‘후쿠시마 괴담’은 그야말로 대부분이 사실무근의 루머지만 유의할 점이 없진 않다. 독일의 공영방송 ZDF가 제작, 방영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은 ‘안전 일본’의 신화를 여지없이 붕괴시킨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이니 납품 비리 관련 소식을 안일하게 들어 넘긴다. 설마 우리에게 그런 파국적 재앙이 닥치지는 않겠지 하며.
아무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 대한민국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자연재해는 늘 예정돼 있고 기후변화로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아무리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도 어느 시점, 어느 골목에 이르러 피할 수 없는 재난과 사고 위험에 맞닥뜨릴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안전한가. 누가 어떻게 안전을 보장해줄 것인가. 말로만 읊어대는 안전구호가 아니라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안전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나. 기후변화대책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이제 백년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범국가적 차원에서 대한민국 전반에 대한 안전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50년 이상의 개발역사를 써왔고 그만큼 노후한 기반구조와 시설이 많아 잠재적 위험이 높은 다중 복합 위험사회가 됐다. 이 모든 잠재적 위험인자들을 미리 진단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로 사고 가능성과 위험을 평가해 대책을 강구해놓는 범국가적 비상대비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