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현금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했다면 절도죄가 성립될까. 지난해 초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김모씨와 혼인신고를 마친 남편 이모씨는 아내의 과거를 의심했고 이는 상습적인 폭력으로 이어졌다. 아내와 공동명의로 된 부동산을 자신의 소유로 돌리기로 마음먹은 이씨는 아내 지갑에서 현금카드를 훔쳐 500만원을 인출했다가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집단·흉기 등 협박, 상해, 폭행, 사문서 위조, 절도 등 이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현금카드를 통한 현금 인출 부분은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적용해 형을 면제했다.

현행 형법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배우자 간 절도죄는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의 친족상도례를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일 절취한 현금카드를 사용해 현금을 인출·취득한 행위는 절도죄가 성립된다며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절취한 현금카드를 사용해 현금을 인출·취득하는 행위는 현금인출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현금을 자기 지배하에 옮겨놓는 것이 돼 절도죄가 성립한다”며 “이 경우 피해자는 현금인출기 관리자가 된다”고 전제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