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의자에 앉아있고 같은 자세로 비행기 오래타면 다리 퉁퉁붓고 저릿저릿
혈액순환 안돼 '피떡' 생겨 혈관 막으면 급성심근경색
자주 걷고 물 많이 마셔야 기내선 틈틈이 다리 마사지
활동량이 줄면 근육과 뼈마디가 아프다는 사람이 많지만 더 무서운 것은 혈관이 막히는 ‘혈전(피떡)’이다. 의자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혈전증(血栓症)을 앓는 사례가 종종 있다.
혈전증은 통상 다리 정맥(靜脈)에 생긴 젤리 같은 ‘피딱지(혈전)’가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올라가 폐로 이동하면서 폐동맥을 막아 생기는 응급 질환이다. 비행기 좌석이나 좁은 사무실 등에서 장시간 앉아 있다가 생긴다고 해서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혈전증은 급성심근경색, 뇌졸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혈전증 환자는 2006년 9121명에서 지난해 1만4354명으로 8년간 5233명 증가했다. 매년 700여명 가까이 늘고 있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혈전증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오랫동안 별 움직임 없이 앉아 있으면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뉴질랜드에서 나온 연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고 1주일에 1~2회 사무실 책상에서 점심을 먹으면 하지(다리) 정맥 내에 생긴 혈전 때문에 혈전증에 걸릴 위험이 2.2배 높아진다. 국내에선 게임중독에 빠진 사람이 PC방에서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혈전증으로 돌연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 관절이 접힌다. 그러면 허벅지에서 배 안쪽으로 들어가는 골반 정맥도 접힌다. 정맥은 손으로 살짝만 눌러도 찌그러지는 물렁물렁한 조직인데, 골반 정맥이 닫히니 그 아래 다리 정맥에 있는 피가 심장 쪽으로 가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이다. 도로를 차단하면 자동차들이 줄줄이 밀려 정체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고정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붓거나 저린 것도 이런 이유다. 정맥에는 탄력 근육이 없어 피를 자체적으로 심장에 보내주지 못한다. 피가 고이면,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혈액은 굳기 시작한다. 이른바 핏덩어리로 변하는 것이다. 임도선 고려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장시간 자세 변화를 주지 않고 앉아 있을수록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특히 다리를 꼬고 앉아서 오래 일하면 혈액순환에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휴가 때 혈전증 조심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면 비행기를 오래 타거나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 혈전증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좁은 기내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다리 혈관에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3배나 높아진다.
최근 국내 한 중소기업 대표(66)가 운항 중인 비행기 안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는데, 원인을 조사했더니 장시간 비행으로 정맥 내 혈액이 굳는 혈전증 때문이었다. 기내에서 다리가 갑자기 붓거나 저린 느낌이 심하게 들면 혈전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다리우시 모자파리안 미 하버드대 의대 심혈관학과 교수는 “혈액 응고 위험은 비행기 여행 시간이 두 시간 길어질 때마다 26%씩 높아진다”며 “기내에서는 기압과 산소 농도가 지상의 80% 수준이기 때문에 피의 흐름이 더 둔해져 혈전이 생기기 쉽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혈전증은 60세 이상 고령자, 임산부, 흡연자, 동맥경화나 비만 등이 있는 경우,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혈전증 예방하려면
혈전증 치료는 증상이 나타난 뒤 1주일이 고비다. 이 기간 내 헤파린을 사용해 혈전을 녹이면 효과가 있다. 후유증도 거의 남지 않는다. 이 기간이 지나면 풍선 혈전 제거술, 약물치료 등을 동원하지만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만성질환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혈전이 판막과 혈관 벽에 달라 붙어 정맥 내 판막의 기능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평생 보행장애를 앓을 수 있다.
혈전증은 예방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가벼운 걷기를 자주하고, 평소 앉아 있더라도 최소 1시간 간격으로 스트레칭을 해주면 좋다. 앉은 자세에서는 다리를 자주 움직이고 자세 변화를 주도록 한다.
혈액을 묽게 하기 위해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장시간 비행기를 탈 땐 물을 자주 마시고 틈틈이 종아리 근육을 마사지하거나 복도를 걸으면 도움이 된다. 기내에서는 가급적 커피나 술을 자제하고 몸을 옥죄는 자세로 잠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 = 임도선 고려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