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2일 오후 2시18분

자기 회사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권리(신주인수권)를 행사하지 않고 시장에 내다파는 상장사 대주주가 늘고 있다.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이 권리를 제3자에게 팔아 투자자금을 유치하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시가보다 싸게 주식을 확보할 수 있고 보호예수가 없어 곧바로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주가에는 단기적으로 물량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주주 신주인수권 매각 잇따라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닥 스마트폰 부품업체 토비스의 대주주인 김용범 대표와 하희조 대표는 주당 3396원에 토비스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 132만주를 지난 3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수차례에 걸쳐 우리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에 매각했다. 김 대표와 하 대표는 토비스가 2010년 8월 100억원 규모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할 당시 신주인수권만 떼어내 주당 152원에 샀다. 지난달 말 행사 만료를 앞두고 토비스 주가가 1만원 부근까지 급등하면서 신주인수권 가격은 ‘금값’이 됐다. 대주주들이 지난달 매각한 신주인수권 가격은 주당 5604원에 달했다. 2억원가량 든 신주인수권을 팔아 45억원을 손에 쥔 것이다.

코스닥 경관조명 제조업체 누리플랜도 이상우 회장 등이 신주인수권 86만주가량을 한국티엠아이주식회사 등에 매각했다. 투자자들은 누리플랜 주식(지난 2일 종가 8390원)을 주당 6954원에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382원에 매입했다.

정밀계측장비를 생산하는 나노트로닉스의 최대주주 한진호 대표도 지난달 신주인수권 52만8401주를 주당 80원에 제3자에게 넘겼다. BMW 판매법인인 도이치모터스는 주요 주주가 신주인수권 327만주를 11억7000만원에 매각했다.

○대주주·기업·투자자 ‘윈윈’

대주주가 신주인수권을 투자자에 매각하는 것은 행사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이 주가보다 낮더라도 신주를 사려면 목돈이 필요하다. 기존 보유 주식을 팔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차익을 얻는 대주주도 있지만 시장에서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안정적인 지분을 이미 확보한 대주주는 신주인수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고 매각하는 방안을 선호할 수 있다.

대주주가 신주인수권을 넘기면 기업 입장에선 새 투자자를 유치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주인수권 행사로 토비스는 45억원, 도이치모터스도 127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다. 누리플랜은 신주인수권 행사가 마무리되면 60억원의 신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투자자들은 상장사 지분을 시가보다 싸게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자은행(IB) 업계도 신주인수권 투자자와 주주를 연결해주는 중개 업무를 시작한 곳이 적지 않다. 다만 신주인수권 매각으로 주식 물량이 단기간 시장에 쏟아질 수 있어 기존 주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신주인수권 행사 물량은 유상증자와 달리 보호예수가 없어 사모펀드(PEF)와 같은 장기투자자가 아니라면 단기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허란/조진형 기자 why@hankyung.com

■ 신주인수권(워런트)

보통주를 일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 소유자에게 부여하는 옵션을 말한다. 회사가 BW를 통해 장기자금을 조달할 때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발행해왔다. 그러나 최대주주의 되사기 행태가 만연하면서 최대주주의 지분율 높이기나 편법증여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신주인수권을 사채와 분리해 매매할 수 있는 분리형 BW 발행이 이달 말부터 금지된다. 이미 발행된 신주인수권은 분리매매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