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일기예보, 맞히는 것보다 틀리지 않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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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기상캐스터' 김동완 前기상통보관
정감있는 예보로 30년 인기몰이
고된 예보관 업무…인센티브 부족
젊은 캐스터들 공부 더 많이 해야
정감있는 예보로 30년 인기몰이
고된 예보관 업무…인센티브 부족
젊은 캐스터들 공부 더 많이 해야
“요새 예보관들은 지나치게 슈퍼컴퓨터 등의 기계에만 의존해요. 그러나 판단은 결국 예보관이 하는 거죠. 예보는 기술이고, 기술은 숙련과 경험이 쌓여야 하는 거니까.”
국내 1호 기상캐스터로 불리는 김동완 전 기상통보관(78)은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27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1959년 관상대(현 기상청 전신) 직원으로 입사한 후 1965년부터 방송에 출연해 구수하고 정감있는 일기예보로 30여년 동안 많은 인기를 누린 국내 일기예보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기상청이 수백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들여왔지만 과거에 비해 오히려 날씨를 제대로 맞히지 못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날씨는 워낙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100% 정확하게 맞히는 건 불가능하다”며 “우리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는 90%를 넘을 정도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상청 예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있다고 강조했다. “20년 이상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 예보관이 돼야 하는데 고된 업무 탓에 예보관을 기피하고 ‘잘나가는’ 다른 부서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풍조는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예보관들에게 승진이나 임금 등의 인센티브를 많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통보관은 “예보관들이 반드시 맞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맞히려고 하지 말고 틀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더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오늘 최고기온이 33도이고, 내일은 34도인지 35인지 헷갈린다고 할 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덥겠습니다’고 말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기상청에 근무하면서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하던 그는 1982년 24년간 몸담았던 기상청을 떠나 MBC 보도위원(부장직)으로 입사한 후 1997년까지 근무했다. 30여년 동안 그의 일기예보가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생활 기상예보’ 덕분이었다. ‘불쾌지수가 높은 날입니다. 감정 관리 조절에 유념하세요’ ‘미니스커트를 입기에는 추운 날씨가 되겠습니다’ 등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인기가 날로 치솟다 보니 1970년 초반 TBC(동양방송)에서는 일기예보를 뉴스 뒤에 붙이지 않고, 독립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별도 편성했다. 방송국의 스카우트 전쟁도 치열했다. 그는 “KBS MBC에서 전속 캐스터로 영입하기 위해 관상대 연봉의 세 배를 주겠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이병철 TBC 회장은 그를 붙잡기 위해 백지수표와 함께 10년 종신 이사직을 내걸기도 했다.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김 전 통보관 시절과는 달리 2000년대 들어 기상캐스터는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됐다. 인기 기상캐스터들이 연예계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 전 통보관은 자신이 국내 기상캐스터 1호라고 불리는 게 전혀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요새 기상캐스터는 옷차림과 외모에 더 신경 쓰고, 일기예보 전문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시청자들도 젊은 기상캐스터의 외모와 옷차림 보는 데만 치중하고 정작 날씨예보는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국내 1호 기상캐스터로 불리는 김동완 전 기상통보관(78)은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27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1959년 관상대(현 기상청 전신) 직원으로 입사한 후 1965년부터 방송에 출연해 구수하고 정감있는 일기예보로 30여년 동안 많은 인기를 누린 국내 일기예보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기상청이 수백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들여왔지만 과거에 비해 오히려 날씨를 제대로 맞히지 못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날씨는 워낙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100% 정확하게 맞히는 건 불가능하다”며 “우리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는 90%를 넘을 정도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상청 예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있다고 강조했다. “20년 이상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 예보관이 돼야 하는데 고된 업무 탓에 예보관을 기피하고 ‘잘나가는’ 다른 부서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풍조는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예보관들에게 승진이나 임금 등의 인센티브를 많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통보관은 “예보관들이 반드시 맞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맞히려고 하지 말고 틀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더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오늘 최고기온이 33도이고, 내일은 34도인지 35인지 헷갈린다고 할 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덥겠습니다’고 말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기상청에 근무하면서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하던 그는 1982년 24년간 몸담았던 기상청을 떠나 MBC 보도위원(부장직)으로 입사한 후 1997년까지 근무했다. 30여년 동안 그의 일기예보가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생활 기상예보’ 덕분이었다. ‘불쾌지수가 높은 날입니다. 감정 관리 조절에 유념하세요’ ‘미니스커트를 입기에는 추운 날씨가 되겠습니다’ 등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인기가 날로 치솟다 보니 1970년 초반 TBC(동양방송)에서는 일기예보를 뉴스 뒤에 붙이지 않고, 독립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별도 편성했다. 방송국의 스카우트 전쟁도 치열했다. 그는 “KBS MBC에서 전속 캐스터로 영입하기 위해 관상대 연봉의 세 배를 주겠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이병철 TBC 회장은 그를 붙잡기 위해 백지수표와 함께 10년 종신 이사직을 내걸기도 했다.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김 전 통보관 시절과는 달리 2000년대 들어 기상캐스터는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됐다. 인기 기상캐스터들이 연예계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 전 통보관은 자신이 국내 기상캐스터 1호라고 불리는 게 전혀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요새 기상캐스터는 옷차림과 외모에 더 신경 쓰고, 일기예보 전문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시청자들도 젊은 기상캐스터의 외모와 옷차림 보는 데만 치중하고 정작 날씨예보는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