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선 사용…소비자들은 아직 꺼려
산업부, 인증품목 요청에 환경부 "유해물질 우려"
심원테크가 한 해 재제조하는 토너카트리지는 약 4만개. 이 가운데 90% 이상을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 때문에 중국산 ‘짝퉁’이나 재활용품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김준호 심원테크 대표는 “회사 차원에서 K마크 인증을 받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제라도 일반 소비자가 믿고 구입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인증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제조란 중고품을 분해해 세척·검사·보수·조정·재조립 등을 거쳐 원래 성능을 유지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친환경적이라는 이유로 제재조를 독려하고 있다. 산업폐기물로 버려지는 제품들이 다시 상품화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제조 산업은 연간 63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도 2005년 재제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품질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8년 동안 자동차·공기청정기·정수기 관련 부품 19개 품목이 국가 인증을 받았다. 소비자들은 정품은 아니지만 정품에 준하는 제품을 싼 값에 믿고 살 수 있다.
하지만 품질인증 품목 지정은 환경부 장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협의해 고시하도록 돼 있어 더디게 이뤄지는 편이다. 품목 수로는 121개를 지정한 미국의 6분의 1 수준이다. 주로 산업부가 품목 지정을 제안하지만 환경부가 반대하면 품목 고시를 할 수 없다. 최근 환경부는 자동변속기, 정수기용 스테핑 모터 등 9가지를 재제조 품목으로 추가 지정하면서 토너카트리지도 포함하자는 산업부의 제안을 공식 거부했다. 이에 산업부는 추후 품질인증 기준을 심사할 때 원제조사와 환경부 참여 보장 등의 조건을 달아 환경부에 품목 지정을 다시 요청한 상태다.
환경부의 반대 논리는 이렇다. 토너카트리지 재제조가 특허,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또 영세 중고품 시장이 타격받을 뿐 아니라 재제조 과정에서 유해물질 사용 등이 우려스럽다는 주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제조업체와 영세 제조업체 등의 이해관계가 너무 첨예하다”며 “더 꼼꼼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재제조가 법적으로 특허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게 다수 견해라는 입장이다. 소비자가 정품을 살 때 제품 가격에 포함된 특허비용을 이미 지급했기 때문에 원제조업체가 버려진 제품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제조는 오히려 산업폐기물을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이라고 산업부는 주장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에서는 토너카트리지 재제조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재제조업체는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품목 지정은 중소기업 살리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재제조 업계에서는 환경부와 산업부의 이 같은 ‘엇박자’에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어느 부처에서 재제조 산업을 담당하든 업계는 상관이 없다”며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再제조
remanufacturing. 중고 제품을 분해해 세척·검사·보수·조정·재조립 등을 거쳐 원래 성능을 유지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 부품 교체 등을 통해 원제품에 가깝게 복원한다는 점에서 재활용과 다르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