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5일 오후 3시50분
[마켓인사이트] 증권'빅5' 채권 손실, 금융위기후 최대
국내 증권사들이 지난 1분기(4~6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분기 채권 평가손실을 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들의 채권 보유 규모가 사상 최대인 상황에서 채권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최종 영업 손익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금리변동 위험을 헤지(회피)했느냐에 달려 있지만 ‘어닝 쇼크(급격한 실적악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채권값 2% 급락…‘어닝쇼크’ 우려

5일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한경-KIS-로이터 종합채권(순가격)지수는 지난 4~6월 금융위기 이후 분기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채권 자본손익을 추종하는 이 지수는 지난 6월 말 현재 107.08로 3개월 전의 110.07에서 1.9% 급락했다. 미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지난 5월과 6월 두 달 동안 국고채 3년물 금리가 0.4%포인트 급등한 탓이다.

금리의 가파른 상승은 증권사 실적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은행이나 보험사와 달리 보유 채권의 90% 이상을 ‘단기매매증권(당기손익인식증권)’으로 분류하고 있어서다. 각사 연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5대 증권사의 채권 보유잔액(당기손익인식 대상 채무증권)은 지난 3월 말 현재 약 58조원에 이른다. 2008년 3월 말 26조원에서 5년 동안 두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의 대부분은 단순 매매거래 목적이 아닌 만큼 평가손익이 최종 손익에 그대로 반영되진 않는다. 환매조건부증권(RP)과 주가연계증권(ELS) 등 고객에게 판매한 금융상품의 ‘기초자산’ 성격으로 손익을 상계처리할 수 있는 파생상품 계약을 함께 맺고 있어서다.

하지만 급작스런 금리 변동 시점엔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는 시점엔 헤지가 쉽지 않아 대형사는 대부분 어닝쇼크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각사 분기 세전이익이 100억원 안팎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같은 때 대형사들은 200억원에서 400억원대 세전이익을 냈다.

◆위험관리 능력 검증 계기

국내 증권사들은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시장 금리 하락에 힘입어 그동안 채권 투자로 적지 않은 이익을 올려왔다. 2012사업연도 자기자본 5대 증권사의 장부상 채권 평가이익 합산금액은 2230억원이다. 상환·처분 이익까지 합치면 4700억원에 이른다. 헤지 거래로 인해 최종 손익에 미친 영향은 천차만별이지만 주식위탁매매 수수료 감소를 만회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일부 증권사는 매년 평가이익을 올리는 과정에서 금리변동 위험 관리에 소홀해졌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신민식 한화투자증권 FICC상품팀장은 “헤지 전략이 개별 회사마다 달라 실적을 예측하긴 어렵다”면서도 “금리 변화에 따른 유가증권 운용 수익률 변동성이 큰 회사라면 위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사보다는 중소형사가 더 큰 실적악화를 경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먼저 실적을 내놓은 HMC투자증권은 채권평가 손실로 4~6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8%나 급감했다. 하태경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중소형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다소 공격적인 운용을 택할 만한 유인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