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석 교수가 서울 건국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그간 출간한 130권의 책은 내 자식과 같은 존재”라며 활짝 웃고 있다. 건국대 제공
임동석 교수가 서울 건국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그간 출간한 130권의 책은 내 자식과 같은 존재”라며 활짝 웃고 있다. 건국대 제공
“중국 고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힐링’(healing·치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 혹은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이 모두 들어 있거든요.”

‘중국 고전 번역의 대가’ 임동석 건국대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고전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 세상을 점령해버린 21세기의 삶이 아무리 각박하다고 하더라도 인생살이의 핵심은 지금이나 2000년 전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설명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해 겉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지만 사람살이의 핵심인 철학과 도덕, 인간관계 등은 이미 2000년 전에 완성된 상태 그대로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중국 고전은 우리 삶의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30년 넘게 중국 고전을 연구해 번역서만 200여권을 낸 임 교수는 최근 ‘한비자’(韓非子·전 5권·동서문화사)를 완역, 출간했다. 한비자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인물인 한비의 저서로 동양 군주론의 최고 이론서이자 법치사상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모순(矛盾)’ ‘수주대토(守株待兎)’ 등 유명한 고사의 출처이기도 한 한비자는 한비가 군주에게 통치법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울분을 터트리며 저술한 책으로 알려졌다.

임 교수의 이번 출간은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완역한 ‘춘추좌전’ 이후 두 달여 만이다. 두 달 만에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했을까.

“중국 고전을 연구해온 게 벌써 서른 해를 넘겼네요. 처음엔 책을 낼 생각까진 아니었는데, 2009년부터 그동안의 연구를 분류해 책으로 엮기 시작했죠. 이번 한비자까지 5년 동안 꼭 130권이 나왔네요. 춘추좌전 집필에는 8년, 한비자는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1978년 대만으로 유학간 임 교수는 1983년 ‘조선역학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만 정부에서 학위를 주는 마지막 ‘국가박사’였다. 임 교수의 박사논문은 조선시대 역관들이 중국어를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한 연구로, 현재 중국 베이징대에서 수업교재로 쓰이고 있다. 유학에서 돌아온 임 교수는 건국대에서 중국고전을 연구하며 한국중어중문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임 교수는 “총 140만자, 원고지 8000장의 엄청난 분량을 다른 고전들의 동일 사안과 교차 검증하면서 책을 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돈을 벌기 위해 내놓은 책은 아니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고전의 재미와 의미를 새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고전은 1쪽부터 순서대로 보지 않고 부분부분 들춰봐도 괜찮다”며 “고전이라고 해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한비자에 이어 ‘상군서’ ‘오월춘추’ ‘문중자’ 등 다른 중국 고전 완역본도 곧 출간할 계획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