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드림’에서 ‘차이나 나이트메어’로.”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중국에 진출해 있는 서방국가 기업들의 처지를 이같이 비유했다. 서구의 많은 회사들이 중국에 오랜 세월 공을 들이며 성공의 꿈을 꿨지만, 기습적으로 단속의 칼날을 휘두르는 중국 정부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인민재판’으로 악명 높은 중국 소비자 앞에서 속절없이 악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으로 통하는 중국에서 외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내미는 협력이란 이름의 ‘당근’과 감시란 이름의 ‘채찍’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中에 찍히면 끝장"…꼬리 내리는 글로벌 기업들

○고전하는 中 진출 외국 기업들

세계 최대 유제품 업체인 뉴질랜드 폰테라는 지난 3일부터 중국에서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사의 유청 단백질 농축물에서 신경마비를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발견됐고, 이것이 중국에 수출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테오 스피어링스 폰테라 최고경영자(CEO)는 곧바로 중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6일 베이징에서 전 세계 고객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폰테라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20%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폰테라와 미국 미드존슨 등 6개 외국 분유회사에 가격담합 혐의로 총 6억7000만위안(약 1218억원)의 벌금을 물렸다.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매겨진 벌금 사상 최대 액수다. 중국 관영 일간지 인민일보는 6일 “수입 분유가 좋다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며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 편을 들었다. 2008년 멜라민 분유 사태 이후 땅에 떨어진 중국산 분유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부 외국 분유업체는 중국 정부의 압력에 분유값을 자진 인하했다. 지난달 스위스 네슬레와 프랑스 다농은 각각 제품 가격을 20% 내렸으며, 미국 미드존슨은 15% 깎았다.

영국계 거대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지난달 15일 중국지사 간부 4명이 뇌물 제공과 탈세 혐의로 구속됐다. 중국 정부는 GSK를 시작으로 프랑스 사노피와 덴마크 노보노디스크 등 외국계 제약사들에 대한 비리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올 들어 중국에서 가장 혹독하게 당한 외국 기업은 단연 애플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4월1일 애플 중문판 홈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으로 장문의 중국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와 언론들로부터 “애플의 AS정책이 중국을 차별한다”며 집중포화를 맞은 지 약 2주 만이다. ‘우리의 AS정책은 전 세계에서 똑같다’며 콧대를 세워온 애플이 CEO의 이름을 걸고 특정 국가 소비자들을 향해 이처럼 깍듯이 고개를 숙인 건 매우 이례적이다.

애플을 이렇게 무릎 꿇게 만든 건 바로 중국 관영 CC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3·15 완후이(晩會· 저녁 잔치)’다. 중국 CCTV의 경제전문 채널 CCTV2는 1991년부터 매년 3월15일 ‘세계 소비자의 날’에 이 프로그램을 두 시간 동안 방영한다. ‘3·15 완후이’는 중국 국무원 산하 농수산물 및 공산품 품질검사 기관인 국가품질관리국이 CCTV 특별 취재팀과 공동으로 6개월에서 1년간 준비한다.

‘3·15 완후이’는 중국 정부의 ‘외국 기업 손보기’ 수단으로 자주 활용돼왔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의 ‘희생양’이 된 해외 대기업들은 애플을 비롯해 폭스바겐과 염브랜즈 도시바 월마트 등이다. 폭스바겐의 경우 지난 3월 변속기 결함 문제가 제기되자 곧바로 해당 차종 38만4181대를 리콜 조치했다.

FT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구조개혁과 부패 척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며 “쉽게 손대기 어려운 자국 내 국영기업 대신 외국 업체들을 단속하며 명분을 얻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웨이보 마케팅으로 출구를 찾다


외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단속망과 소비자들의 ‘인민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웨이보 가입자 수는 현재 5억명을 돌파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달 11일에는 중국남방항공의 한 승무원이 아이폰을 충전하며 통화하다 감전사했다. 이 같은 사실은 웨이보를 통해 가장 먼저 알려졌고, 애플 비난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애플 중국지사는 지난달 14일 오전 공식 성명을 통해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의 성명문도 웨이보를 통해 수천만명의 소비자에게 전해졌다. 논란은 곧 잦아들었다.

이미아/박병종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