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스카 라인을 보고싶다
하늘에서만 보이는 거대한 ‘지상 그림’이 있다. 남미 페루의 안데스산맥 근처에 있는 ‘나스카 라인’이다. 고대 페루 원주민들은 땅 위의 검은 자갈을 걷어낸 후 하얀 바닥이 드러나도록 파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거미, 고래, 원숭이, 벌새 등의 다양한 기하무늬가 어우러져 경이로운 모습을 연출하며, 큰 것은 지름이 200m에 달한다. 이 그림은 땅 위에서 보면 그냥 긴 줄을 그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상 위로 올라가면서 선이 어떻게 굽어지고, 어디로 연결됐는지 알게 되면서 마치 거대한 판화 같은 모습을 선사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빅데이터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빅데이터는 말 그대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말한다. 예전에는 개별적 의미도 없고 양만 많던 데이터들이 지금은 데이터 마이닝 기술과 최신 정보처리기술이 접목하면서 유용한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파편 같은 정보를 서로 관련 있는 것끼리 묶고 연결하면서 책의 목차나 등산 지도를 보듯이 빅데이터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데이터’를 가공해 ‘정보’를 얻고, 정보에서 실질적 의미가 있는 ‘지식’과 ‘지혜’를 쌓았다면 이제는 데이터 자체, 즉 빅테이터를 직접 활용하는 시대가 됐다. 정부에서도 빅데이터 활용을 포함하는 ‘정부3.0’ 추진계획을 마련하고 기상, 의료 등 활용 가치가 높은 공공정보를 민간에 개방할 계획이다. 특허청도 이에 보조를 맞춰 보유하고 있는 2억2000만건의 특허정보를 최대한 민간에 공개할 생각이다. 여기에 매년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 출원되는 특허정보까지 공개된다면 그야말로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한 선제적 특허전략 제시 등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6월 필자가 참석한 미국, 중국, 일본, 유럽 특허청장과의 선진 5개국(IP5) 특허청장회담에서 특허 빅데이터를 무상으로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준비 기간을 거쳐 조만간 이 정책이 시행되면 우리 기업이나 국민들이 주요 국가의 특허청이 생산했거나 수집한 특허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발명돼 사람들이 제대로 된 나스카 라인을 감상할 수 있었듯이, 특허 빅데이터 정책으로 우리 기업들이 수억 건의 특허정보를 활용해 나스카 라인과 같은 멋진 ‘지상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한다.

김영민 특허청장 kym0726@kipo.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