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레핀의 ‘기막힌 해방감’(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국립미술관)
일리야 레핀의 ‘기막힌 해방감’(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국립미술관)
한 쌍의 젊은 남녀가 파도가 사납게 요동치는 바닷가에서 손을 붙들고 서 있다. 파도는 금방이라도 두 사람을 집어 삼킬 듯하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은 두 사람이 금세 급류에 휩쓸려 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되지만 두 사람은 걱정 말라는 태도다. 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라. 놀랍게도 웃고 있다. 여자는 혹시라도 모자가 벗겨질까 다소 주저하지만 남자의 자신감 앞에서 공포심도 잊었다.

러시아의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이 그린 ‘기막힌 해방감’은 러시아 사회가 새로운 국가 건설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제정 말의 정치적 혼란기에 그려졌다. 사회주의에 공명했던 그는 그림에서도 기독교 주제와 신화의 세계에 안주한 아카데미 미술에 반발해 현실의 부조리에 눈을 돌리라고 외쳤다. ‘기막힌 해방감’에서도 그런 그의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리따운 여인은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포효하는 파도는 자유를 갈구하는 친구들의 함성이다.

놀라운 건 이런 강력한 메시지를 너무나 로맨틱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인들의 레핀 사랑은 괜한 것이 아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