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억대 금품수수도 부인…"아내가 순금 20돈 받은 건 청탁용 아닌 선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사진)이 12일 건설업자에게서 억대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부인했다. 정치 개입 혐의 부정에 이어 개인 비리까지 검찰 공소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양측 간 법정 싸움이 치열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이날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과 알선수재 혐의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잇따라 열었다. 원 전 원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의 변호는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부지 특검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 변호를 맡은 이동명 변호사(법무법인 처음 대표)가 맡았다.

이 변호사는 “피고가 현금 1억1000만원과 미화 4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검찰은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의 진술에 기초해 원 전 원장이 현금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환전기록 등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황 전 대표가 검찰과 협상하며 거짓 진술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원 전 원장의 부인이 순금 20돈으로 된 십장생과 호랑이 크리스털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생일선물일 뿐이고 공사 수주 청탁의 대가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일선물로 1년 간격을 두고 받았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며 “게다가 원 전 원장의 처가 받아 이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원 전 원장은 전혀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변호사는 “원 전 원장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대선에 개입하라고 국정원 심리전단에 지시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지난달 열린 공판에서 그는 “원 전 원장의 발언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다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종북 정권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원장님 말씀’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를 선거나 정치 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날 재판부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등 국정원 전·현직 간부 4명과 실무진 4명, 황 전 대표 등을 각각 증인으로 채택하는 한편 두 사건을 별도로 심리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가능한 한 정치적 색채를 지우고 재판하겠다”며 “양측이 불필요하게 정치적 주장이나 견해를 내세우면 제재하겠다”고 전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