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불량 규제들
정부 규제는 세금이다. 간단한 규제 하나라도 국민에게는 시간과 돈이 드는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세금을 아무렇게나 거두면 안 되듯이 규제도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규제가 사실상 아무렇게나 만들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몇 년 동안 심사숙고하고 전문적 분석과 평가가 필요했을 엄청난 고강도 규제들이 정치논리와 국민감정으로 밀어붙이기 식으로 도입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골목상권 살리기, 중소기업 보호, 고용 안정, 산업 안전 같은 정책목표엔 목적이 정당하니까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된다는 단순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부작용이나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고비용 저효율의 불량 규제들이 마구 도입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규제 문제의 본질은 규제의 양이 아니라 규제의 질이다. 규제 품질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있다. 규제로부터 국민이 받는 부담은 절차나 제출 서류의 개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의 규제라도 그 규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적·물적 고통을 포함한 총체적 준수부담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규제의 가장 고통스러운 속성은 바로 규제의 불투명성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공무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면, 그것이 비록 한 개의 규제 조항일지라도 규제를 받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규제 법령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상당한’ ‘현저한’ ‘기타 장관이 인정하는’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규정 해석에 공무원이 포괄적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관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요즘엔 아예 법적근거도 없이 민간 자율규제 형식으로 사실상의 규제를 하기도 한다. 규제가 규제인지조차 모호하다. 결국 늘어나는 것은 정치인과 관료의 권력이고, 남는 것은 권력 남용과 부패 가능성뿐이다.

우리나라 규제가 피곤한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규제가 민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아예 국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생각하고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민간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막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규제 집행이 원칙 금지, 허용 예외 방식이다. 인가, 허가, 등록, 신고제에 별 차이가 없다. 사실상 원칙 금지다.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이 무엇인지 정부가 미리 정해주겠다는 생각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정치인과 공무원이 기술과 시장의 진화를 어떻게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적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규제 풍토에서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민간 경제활동의 뒷다리를 잡게 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 피동적으로 규정이나 지키면 된다는 풍조가 생기고 창의성과 다양성이 억제된 하향평준화가 초래된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가 오랫동안 규제개혁을 외쳐왔지만, 국민들이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불량 저질 규제들이 남아 있고 또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불량 규제가 계속 늘어나는 배경은 바로 규제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이익집단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 규제 권한을 즐기는 관료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민생을 챙긴다고 할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규제고,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보호 장벽들이다. 국회에 제안돼 있는 수많은 법안들을 보면 규제만능주의와 관치계획경제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 입법과정에도 행정부와 같은 규제 품질의 사전 점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손톱 밑 가시’를 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손톱 밑 가시’가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불량 규제 덩어리들은 한국 경제의 숨통을 위협하는 ‘염통 밑 고름’이다.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려면 ‘염통 밑 고름’부터 제거해야 한다. 제대로 된 규제개혁이야말로 지하경제를 줄이고, 부정부패를 줄이고,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개혁과제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