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에너지 포트폴리오 새로 짜라
영국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새로운 ‘피크 오일(Peak Oil)’론을 제시해 관심이다. 피크 오일론이란 석유 생산이 매장량 한계로 특정 시점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석유고갈론자들이 흔히 쓰는 용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석유 수요가 줄어 생산이 감소할 것이라는 이색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은 물론 석유를 대신할 대체재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가스 혁명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세계의 천연가스 매장량이 50년분에서 200년분으로 늘어나면서 가스 가격이 3분의 1 아래로 하락했다. 자동차 선박 발전 석유화학 난방 등의 분야에서 석유를 대체하고 있고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알와리드 빈 타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셰일가스로 인해 석유 생산에만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석유시대 끝나간다는 소리 높아

자동차의 기술 혁신도 석유 수요를 줄이는 대체재로 작동한다. 자동차 엔진 부품의 모듈화 등 효율 개선과 차체 경량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기술의 발전 등으로 차츰 석유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씨티뱅크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와 트럭의 연비가 매년 2.5%씩 오르면 3~4년 이내에 석유 수요는 꺾일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 수요가 늘고 있는 중국마저도 지난 3월 2015년까지 자동차 연비 기준을 100㎞당 6.9ℓ수준으로 엄격히 규제하는 법안을 꺼내들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아예 수소 연료전지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절약형 가전이나 생활제품도 석유 수요를 줄이는데 한몫한다.

에너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원자력등 에너지 공급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른 정책 당국의 선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효율성과 극대화를 꾀하는 선택을 내리기가 극히 힘든 상황인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그동안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왔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 에너지 정세에서 확실한 선택지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동안 원전 정책을 외면했던 유럽연합(EU)이 원전에 대한 보조금 허용 방안을 최근 내놓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에너지의 중장기 수급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잘못 설계해 결과적으로 지금 블랙아웃(대정전)위기를 야기했다고 한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력 최대 수요는 15%나 늘었지만 발전 설비 증가율은 5% 선에 그쳤다. 수요 예측이 틀렸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선 205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59%까지 높인다고 돼 있다. 박근혜 정부의 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데 선결 조건은 효율성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면 에너지 정책에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급변하는 세계 에너지 시장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은 한번 결정이 나면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묘안이 없다면 전문가들끼리 밤샘 끝장토론이라도 벌여 결정해야 할 과제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