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 "스타 CEO보다 사고 안치는 '범생이' 환영"
“지루함, 자기 절제, 그리고 겸손함.”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계에서 중시되는 대형 은행 최고경영자(CEO)의 ‘필수 덕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만 해도 금융가 CEO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넘치는 추진력과 충만한 자신감’은 이젠 오히려 CEO로서 일종의 결격 사유가 됐다”고 14일 보도했다. 카리스마형 CEO들이 금융위기 전후로 여러 ‘사고’를 치면서 은행들이 정반대 스타일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지난 2일 영국 국영은행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새 CEO로 임명된 로스 맥이완(56)을 예로 들었다. 뉴질랜드 출신인 맥이완은 지난해 8월 호주 커먼웰스은행에서 RBS 소매영업부문 책임자로 영입됐다는 것 외엔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가 RBS의 수장으로 낙점된 이유는 전임인 스티븐 헤스터가 영국 정부와 마찰을 빚고, 고액 연봉을 고집하는 등 독선적 태도로 일관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WSJ는 전했다. 맥이완은 2015년까지 보너스를 받지 않기로 하고, 기업 대출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마이클 코뱃 미국 씨티그룹 CEO(53)도 매우 조용하고 고지식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코뱃은 특유의 세심하고 체계적인 업무 스타일을 인정받으며, 제왕적 리더십을 추구했던 전임 비크람 판디트와는 또 다른 면모의 과단성을 보이고 있다. 코뱃은 취임하자마자 직원 1만1000명을 정리해고하고, 해외 법인도 대폭 개편했다. 씨티그룹은 구조조정으로 지난 2분기 42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2011년 스페인 산탄데르은행 영국법인 사장에서 영국 로이즈뱅킹그룹 CEO로 스카우트된 안토니오 오르타 오소리오(49)는 아예 “내가 우리 은행 CEO로 있는 한 업무는 간결하고도 지루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경영진 헤드헌팅기업 에곤젠더의 메리 캐럴라인 틸먼 금융서비스부문 팀장은 “앞으로 각국 금융계에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신중한 스타일의 CEO를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에게 강한 카리스마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