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환자 늘면 내국인 병실 부족?…1950년대식 규제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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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늪에 빠진 의료산업 (下) 100만 외국인 환자 시대 열자
병실은 5%로 제한·메디텔 운영도 허용 안해
환자 100만명 유치하면 3만5천명 일자리 생겨
병실은 5%로 제한·메디텔 운영도 허용 안해
환자 100만명 유치하면 3만5천명 일자리 생겨
국내 병원들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은 4년여 전이다. 의료법이 ‘외국인 환자 유인 및 알선행위를 허용’하는 쪽으로 2009년 5월 개정되면서부터다.
보건복지부에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겠다’고 등록한 병원은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 1811곳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지난해 15만5672명으로 당초 목표치(15만명)를 넘어섰다. 한국 의료산업이 해외 수요를 개척하려는 의지나 능력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의료산업을 ‘내수용’으로 규제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를 ‘봉’으로 보고 진료비를 바가지 씌우는 일부 병원의 행태도 문제다. 100만 외국인 환자 시대를 열려면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병실 5%만 외국인 배정
의료법에서는 국내 병원이 외국인 환자에게 배정할 수 있는 병실을 ‘전체 병실의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가 증가하면 내국인이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외국인 환자가 늘어나면 병원이 더 많이 생기고 의료산업 종사자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 의료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백성이 입을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광목이 태부족인데 외국에 내다 파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출을 반대했던 1950년대 시각이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병실을 구하지 못한 외국인 환자들이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이나 모텔에 머물면서라도 치료를 받겠다”고 해도 국내 병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의사들의 병원 밖 진료’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는커녕 병원 문턱도 넘어서지 말라는 게 한국 의료산업 규제의 현실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메디텔(의료숙박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료 행위와는 무관한 상점 임대업은 병원이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환자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업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환자를 돌보는 외국인 간병인이 머물 곳이 없어 애를 먹는 병원이 많다.
○외국인 진료비는 ‘병원 마음대로’
지난달 쌍꺼풀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의료관광객 왕모씨(27)는 관광만 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왕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강남 성형외과 몇 군데를 다녀봤지만 치료비가 너무 차이 나 혼란스러웠다”며 “어느 병원이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바가지를 쓴다는 생각에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통역 일을 하는 조선족 장모씨는 “외국인이 성형수술을 하면 한국인에 비해 두세 배 정도 바가지를 씌운다”며 “예컨대 쌍꺼풀 수술은 한국인이 하면 80만~120만원인 반면 중국인에겐 200만~25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병원에 대한 외국인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이 의료비를 공개하지 않는 한 얼마를 받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부터 외국인 환자 진료수가를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하도록 하고 시장가격에 대한 소비자 의견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의료산업 규제 풀어야”
지난해 치료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 세계 환자 수는 4000여만명으로 추산됐다. 의료기술이 좋고 진료비가 싼 곳을 찾는 환자가 매년 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쓴 돈은 1000억달러(약 111조원)라는 게 시장조사기관의 추정이다. 의료서비스도 상품처럼 국가를 넘나드는 교역재로 바뀌는 시대인 셈이다.
한국의 의료관광 수입액은 지난해 2391억원(문체부 자료)이었다. 15만여명의 외국인 환자가 한 명당 평균 168만원을 의료비로 썼다.
왕기영 문체부 국제관광과 사무관은 “지난해 해외 환자 유치실적(15만여명)만 놓고 보면 취업유발 효과가 5068명, 생산유발 효과는 4085억원”이라고 말했다. 의료관광객이 100만명으로 늘어나면 연간 3만5000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와 3조원이 넘는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산업을 국제화하려면 의료업계 전반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영훈 한국의료관광협회장은 “의료산업에 대한 여러 규제 때문에 한국의 의료관광산업은 서울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들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문제 등이 생기고 있다”며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의료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관광과 연계한 태국, 진료에 스파·마사지 접목
무비자 입국 싱가포르, 해외 홍보비 80% 보조
2011년 의료관광객 156만명을 기록한 태국의 의료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국의 많은 의사가 지금도 한국에 와 로봇 수술이나 내시경 시술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국가로 성장한 데는 관광과 연계한 의료서비스와 정부의 정책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태국은 성형이나 치과, 건강검진 등 의료서비스에 스파와 마사지를 접목시켰다. 태국에 가면 적은 돈으로 성형이나 검강검진은 물론 스파와 마사지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태국 정부는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민간자본의 병원 운영을 일부 허용했다. 해외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에 관세와 법인세를 감면하는 지원책도 내놨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해 태국 의료산업(스파 포함) 매출은 150억바트(약 5437억원)를 기록했다. 태국의 의료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매년 7~10%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외국 환자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병원이 외국인 환자에게 받는 의료수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도 제공한다.
해외 의료홍보비는 80% 보조해주고 있다. 외국인의 싱가포르 의료서비스 만족도는 80%에 이른다는 게 시장조사기관의 분석이다.
보건복지부에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겠다’고 등록한 병원은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 1811곳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지난해 15만5672명으로 당초 목표치(15만명)를 넘어섰다. 한국 의료산업이 해외 수요를 개척하려는 의지나 능력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의료산업을 ‘내수용’으로 규제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를 ‘봉’으로 보고 진료비를 바가지 씌우는 일부 병원의 행태도 문제다. 100만 외국인 환자 시대를 열려면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병실 5%만 외국인 배정
의료법에서는 국내 병원이 외국인 환자에게 배정할 수 있는 병실을 ‘전체 병실의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가 증가하면 내국인이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외국인 환자가 늘어나면 병원이 더 많이 생기고 의료산업 종사자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 의료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백성이 입을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광목이 태부족인데 외국에 내다 파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출을 반대했던 1950년대 시각이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병실을 구하지 못한 외국인 환자들이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이나 모텔에 머물면서라도 치료를 받겠다”고 해도 국내 병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의사들의 병원 밖 진료’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는커녕 병원 문턱도 넘어서지 말라는 게 한국 의료산업 규제의 현실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메디텔(의료숙박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료 행위와는 무관한 상점 임대업은 병원이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환자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업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환자를 돌보는 외국인 간병인이 머물 곳이 없어 애를 먹는 병원이 많다.
○외국인 진료비는 ‘병원 마음대로’
지난달 쌍꺼풀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의료관광객 왕모씨(27)는 관광만 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왕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강남 성형외과 몇 군데를 다녀봤지만 치료비가 너무 차이 나 혼란스러웠다”며 “어느 병원이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바가지를 쓴다는 생각에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통역 일을 하는 조선족 장모씨는 “외국인이 성형수술을 하면 한국인에 비해 두세 배 정도 바가지를 씌운다”며 “예컨대 쌍꺼풀 수술은 한국인이 하면 80만~120만원인 반면 중국인에겐 200만~25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병원에 대한 외국인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이 의료비를 공개하지 않는 한 얼마를 받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부터 외국인 환자 진료수가를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하도록 하고 시장가격에 대한 소비자 의견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의료산업 규제 풀어야”
지난해 치료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 세계 환자 수는 4000여만명으로 추산됐다. 의료기술이 좋고 진료비가 싼 곳을 찾는 환자가 매년 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쓴 돈은 1000억달러(약 111조원)라는 게 시장조사기관의 추정이다. 의료서비스도 상품처럼 국가를 넘나드는 교역재로 바뀌는 시대인 셈이다.
한국의 의료관광 수입액은 지난해 2391억원(문체부 자료)이었다. 15만여명의 외국인 환자가 한 명당 평균 168만원을 의료비로 썼다.
왕기영 문체부 국제관광과 사무관은 “지난해 해외 환자 유치실적(15만여명)만 놓고 보면 취업유발 효과가 5068명, 생산유발 효과는 4085억원”이라고 말했다. 의료관광객이 100만명으로 늘어나면 연간 3만5000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와 3조원이 넘는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산업을 국제화하려면 의료업계 전반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영훈 한국의료관광협회장은 “의료산업에 대한 여러 규제 때문에 한국의 의료관광산업은 서울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들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문제 등이 생기고 있다”며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의료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관광과 연계한 태국, 진료에 스파·마사지 접목
무비자 입국 싱가포르, 해외 홍보비 80% 보조
2011년 의료관광객 156만명을 기록한 태국의 의료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국의 많은 의사가 지금도 한국에 와 로봇 수술이나 내시경 시술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국가로 성장한 데는 관광과 연계한 의료서비스와 정부의 정책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태국은 성형이나 치과, 건강검진 등 의료서비스에 스파와 마사지를 접목시켰다. 태국에 가면 적은 돈으로 성형이나 검강검진은 물론 스파와 마사지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태국 정부는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민간자본의 병원 운영을 일부 허용했다. 해외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에 관세와 법인세를 감면하는 지원책도 내놨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해 태국 의료산업(스파 포함) 매출은 150억바트(약 5437억원)를 기록했다. 태국의 의료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매년 7~10%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외국 환자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병원이 외국인 환자에게 받는 의료수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도 제공한다.
해외 의료홍보비는 80% 보조해주고 있다. 외국인의 싱가포르 의료서비스 만족도는 80%에 이른다는 게 시장조사기관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