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대자동차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28일간 파업을 벌였다. 노조 내 ‘강성’으로 분류되는 문용문 노조위원장 등 현 집행부는 이를 통해 1인당 평균 2260만원의 임금과 야간근무 폐지 등의 합의안을 회사에서 얻어냈다. 물론 파업으로 8만2088대의 생산 차질을 빚으며 1조7048억원의 손실을 입힌 끝에 얻은 ‘성과’였다. 그런데 노조원을 대상으로 벌인 임금협상안 찬반투표 결과 찬성은 52.7%에 불과했다. 여느 노조보다 ‘화려한 업적’을 올렸는데도 찬성률이 낮았던 까닭은 뭘까. 현 집행부의 ‘재집권’을 경계하는 다른 계파들의 조직적인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달 말로 현 문용문 집행부의 임기가 끝나고 새 집행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노조 내 계파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노조가 무려 180가지의 요구 조건을 내걸면서 파업을 예고한 배경에도 계파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현대차 전직 노조간부 김모씨(50)는 “현대차 노조가 20년 이상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인 건 막강한 노조 권력을 쥐기 위해 계파 간 선명성 경쟁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노조 계파 투쟁…위원장 선거때마다 파업 강도 세졌다

○집행부 선거해마다 강경 파업

현대차 노조가 설립된 건 1987년. 이때부터 1994년과 2009~2011년 등 4년을 제외하곤 작년까지 22년간 파업을 벌였다. 최근 10여년간 노조 파업을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조위원장 선거가 있는 해에는 강경 파업이 반복되는 것. 2003년과 2005년, 2007년과 비리 사건으로 1년 만에 집행부가 바뀐 2008년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2005년을 보자. 이헌구 노조위원장 임기 첫해인 2004년, 현대차 노조는 5일간 파업했으나 차기 집행부 선거가 있던 2005년엔 무려 25일간 파업을 벌였다. 생산 차질 대수도 2004년 1만8994대에서 2005년 4만1889대로 급증했다. 2007년에도 비슷했다. 이전 해인 2006년 하루에 불과하던 노조 파업 일수는 집행부 선거가 있던 2007년 11일로 늘었다.

현대차 노조가 2년 마다 반복적으로 강경 파업을 벌인 까닭은 뭘까. 답은 계파 갈등에 있다. 현대차 노조는 겉보기엔 단일대오처럼 보이지만 서로 성향을 달리하는 7개 계파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현 집행부가 속한 ‘민주현장’과 ‘금속연대’ ‘금속민투위’ 등은 강성으로 분류되는 조직이다. ‘현민노’와 ‘들불’ ‘소통과 연대’ 등은 중도 성향으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노조를 이끈 이경훈 전 위원장이 속한 ‘현장노동자’는 실리주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 계파는 노조집행부 선거 때마다 대의원들의 표심 공략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전임 노조와 차별화를 위해 강경 파업을 주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때로는 ‘집권 계파’를 집중 견제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현 집행부가 소속된 민주현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민투위라는 계파가 노사 협상장을 봉쇄하기도 했다. 2008년 민투위가 노조 집행부를 맡았을 때는 민주현장 계파가 협상장 봉쇄를 주도했다. 중도실리를 추구하는 전현노(현 현장노동자) 소속 이경훈 전 노조위원장은 2011년 다른 계파들의 반발이 거세자 항의 표시로 노사협상 보고대회장에서 새끼손가락을 절단하기도 했다.

○7개 계파 노노 갈등이 파업 원인

이런 현상은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현 집행부의 임기가 다음달 말로 끝남에 따라 각 계파는 ‘차기 집권’을 위해 온갖 요구 조건을 이번 임단협 협상안에 넣어 파업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민주현장(문용문 집행부)과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금속연대가 대표적이다. 올해 집행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금속연대 측은 문 위원장 등 현 집행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노조 간부 출신 인사는 “재선을 노리는 집행부와 이를 막으려는 현장 조직들끼리 선거가 임박할수록 파업을 통해 강성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선명성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노조 계파 간 갈등은 생산 차질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22년간 노조 파업으로 현대차는 120만4458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피해액은 13조3730억원에 달한다. 한 노동전문가는 “노조 위원장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노·노 갈등은 이제 회사 측도 감히 손대지 못하는 난제가 돼버린 상황”이라며 “현대차 노조는 한국에서 가장 큰 특권을 누리는 ‘갑 중의 갑’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울산=하인식/이태명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