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기온이 32도 가까이 오른 지난 17일 오후. 여의도의 한 중학교 앞에선 학생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 탓에 모든 차량은 시동을 켠 채 냉방 중이었다. 대부분의 차량은 학생들이 하교하기 10여분 전부터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인근 여의도 한강공원. 해가 지자 공원 주차장에는 차 안에서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제자리에서 수십여 분간 시동을 걸어두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차량이 제자리에서 3분 이상 시동을 켜고 있는 공회전은 모두 불법이다.

○유명무실한 공회전 단속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도입한 자동차 공회전 단속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시 등 광역자치단체들은 ‘대기환경보전법 59조’에 따라 차량공회전을 단속하는 조례를 마련,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 학교 정화구역, 공원, 터미널 등 2800여곳을 공회전 제한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해온 서울시는 올해부터 시내 전역을 단속지역으로 확대 지정했다. 전국 광역 지자체 가운데선 처음이다. 이를 어길 경우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공회전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공원은 서울시가 지정한 중점 공회전 제한구역이지만 공회전을 단속하는 인력은 거의 없다. 서울시가 올 들어 공회전 위반을 적발, 과태료를 매긴 건수는 지난달 말까지 60건에 그쳤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난 시민 김모씨(36)는 “자동차에서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틀어 놓으면 공회전 단속 대상이 되느냐”고 반문한 뒤 “공회전으로 단속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단속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양완수 서울시 친환경교통과장은 “공회전 위반 단속은 운전자 사전경고 이후부터 시간을 재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지역에서 적발된 공회전 차량 대부분은 운전자가 자리를 비운 차량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즉각 단속’ 추진에 시민 반발

서울시는 단속 실효성을 높기 위해 학교 공원 등 중점 제한 장소에선 경고 없이 즉각 단속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자동차 공회전 제한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시민 반발을 의식해 혹한기(영하 10도 이하)와 혹서기(35도 이상)엔 공회전 단속을 유예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시는 시의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올겨울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개정안이 적용되면 영하 10도 초과 영상 35도 미만일 때 제자리에서 3분 넘게 냉·난방하는 휘발유·가스차량은 모두 적발 대상이어서 시민 반발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시의 공회전 단속이 관광버스 등 생계형 운전기사들의 차량에 피해를 끼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단속 기준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여름 서울에 폭염이 찾아왔지만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공회전을 줄이려면 단속 등 규제뿐 아니라 시민의식도 변화해야 한다”며 “의견을 충분히 모아 개정안을 시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 공회전 단속


에너지 절약과 매연 감소를 위해 정지 상태인 차량이 시동을 걸어 놓는 것을 단속하는 제도. 경유차는 5분(기온 5도 미만이나 25도 이상은 10분), 휘발유·가스차는 3분이며 어기면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