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집단학살
기원전 146년, 지금의 튀니지 지역인 카르타고의 성벽을 뚫고 로마군이 물밀듯 들어왔다. 중무장한 로마군단은 닥치는 대로 창과 칼을 휘둘렀다. 카르타고 인구 25만명 중 20만명이 희생됐다. 살아남은 5만명도 노예로 팔렸다. 2000여년 전에 일어난 이 가공할 제노사이드(genocide·대량학살)는 로마의 역사 왜곡으로 숨겨졌다가 15세기 유럽에서 낡은 문서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제노사이드란 이념이나 인종, 종교 등의 대립으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절멸시키기 위해 행하는 집단학살을 말한다. 인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다. 1944년 법률학자인 라파엘 렘킨이 국제법에서 범죄행위로 규정할 것을 제안하면서 처음 사용했고 1945년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전범 기소 때 공식적으로 쓰였다.

제노사이드의 역사는 인류 문명만큼이나 장구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2차대전 때 희생된 600여만명의 유대인이지만, 그보다 더한 상황이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났다. 공산혁명을 마무리하기 위해 11년간(1929~39) 2000만명의 정치적 반대자를 학살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캄보디아를 피로 물들인 ‘킬링 필드’에는 150만~200만명이 파묻혔고, 1915년부터 시작된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 학살에서는 100만여명이 살해됐다. 1994년 르완다에서 80만명이 희생된 사건은 단 석 달 만에 일어났다.

1941년 9월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의 바비야르 학살 때 3만4000여명, 그 전 해 소련군에 의한 ‘카틴 숲의 대학살’에서는 폴란드인 2만2000~2만5000여명이 암매장됐다. 1923년 일본 관동대학살 때 희생된 한국인은 6660여명이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때도 2000~5000여명이 사망했다. 지난 6월 이후 이집트의 유혈 시위로 사망한 사람이 벌써 1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2011년 시민혁명 때의 850여명보다 많다. 정치 불안과 경제난이 겹쳐 희생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니 큰일이다.

‘잔혹한 세계사’를 쓴 조지프 커민스는 “문명화된 정책의 전형이었던 로마조차도 카르타고 학살 때 그랬듯이 대량학살의 밑바닥에는 극단주의적 이분법이라는 폭탄이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이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는 데 익숙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비극에서 비롯된다. 설익은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행해지는 피의 살육도 집단광기와 선동에 의해 촉발된다. ‘국민, 주권, 영토’라는 국가의 3요소가 정착된 근대에 들어서는 대량학살의 양상이 훨씬 더 기술적이고 첨예해졌다. 결국 정치의 힘을 줄여야 피의 악순환도 없어질 모양이다. 정치 과잉이 항상 문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