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누진제, 저소득층에 더 부담"
서울 동작동에 사는 기초수급생활자 유모씨(54). 지난 4월 그는 정부 보조금 46만원이 전부인 월수입 중 3분의 2 이상(32만90원)을 전기요금으로 냈다. 2월 한 달을 전기 난방에 의존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전기 사용량이 3배 이상 늘어났고 전기요금은 15배 이상 뛰었다. 누진제에 걸려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것이다. 정부가 저소득층 부담을 덜어주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로 개편을 추진하는 까닭이다.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요금도 높이는 제도로 주택용에만 적용하고 있다. 6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한 달에 전기를 300㎾h(3단계) 이상 쓰면 요금이 큰 폭으로 올라간다. 300㎾h는 에어컨(소비전력 1800W)을 하루 평균 6시간 한 달 내내 켤 때 사용하는 전기량이다.

당초 누진제는 저소득층이 전기를 적게 쓰고, 고소득층은 전기를 많이 쓴다는 인식 아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소득 재분배 기능도 클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행 누진제가 저소득층에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전력가격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수가 많을수록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전기요금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인 이상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가정의 월평균 전기요금은 6만1025원이었다. 5만137원을 납부한 최저생계비 이상~2배 미만 가정보다 1만원 이상 많았다. 최저생계비 2배 이상~3배 미만 가정(5만3406원)과 3배 이상~4배 미만 가정(5만9755원)보다도 각각 7619원, 1270원 전기요금이 높았다.

이는 저소득층이 다른 에너지보다 가격이 싼 전기장판 등 전기 난방에 더 의존하는 반면 고소득층은 가스 난방 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데도 소득 수준에 상관 없이 누진제는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보고서도 “소득 규모보다는 가족 수가 많을수록 전기요금이 더 많았다”며 “고소득층의 전기 과다 소비를 막는다는 애초 의도와 다른 누진제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누진율은 한국(11.7배)보다 훨씬 낮다.

미국 민간 전기업체인 듀크파워의 누진제는 2단계로 돼 있다. 여름철에 단계에 따라 요금 차이가 1.3배 나고 그 외 시기에는 1.12배다. 영국 EDF에너지의 누진제는 2단계로 0.61배 요금차만 있을 뿐이다. 일본 도쿄전력은 1.5배 차이가 나는 3단계 누진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르면 10월께 이 같은 누진제를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요즘은 저소득층도 전자제품과 전기 냉난방 사용을 늘리고 있어 전기요금 부과 환경이 크게 변했다”며 “저소득층을 배려한 누진제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산 한양대 교수는 “저소득층의 에너지 복지는 누진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