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혁신가·미숙한 처세술…잡스의 두 얼굴
“나머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갖고 싶습니까?”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잘나가던 존 스컬리 펩시콜라 사장에게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안하면서 말한다. 당시 PC를 처음 선보이며 주목받았지만 신생 회사에 불과했던 애플이 유명 CEO를 영입하기는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잡스는 탁월한 협상력으로 이를 성사시킨다. “애플을 창립할 때 제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신사옥으로 입주한 잡스가 직원들에게 던진 말을 실천한 셈이다.

잡스는 PC 아이팟 아이폰 등으로 세상을 바꾼 ‘혁신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동료와 더불어 사는 지혜는 부족했다. 그는 경영전략을 둘러싸고 스컬리 CEO와 마찰을 빚으면서 자신이 영입한 스컬리에게 쫓겨나고 만다. “뛰어나지만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던 까닭이다.

혁신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한 경영자의 영욕을 다룬 영화 ‘잡스’(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가 오는 29일 개봉한다. 애슈턴 커처가 잡스 역으로 나선 이 영화는 1970년대 대학을 중퇴하고 히피 생활을 즐기던 잡스가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하고 쫓겨났다가 1997년 애플 CEO로 복귀하기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잡스의 천재성이 아니라 사업가적인 판단력과 집중력을 파고든다. PC를 개발한 주인공은 잡스의 절친 스티브 워즈니악이었지만 그는 단순히 개인적인 용품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잡스는 세상을 바꿀 물건으로 보고 투자자들을 설득해 상품화한다. 그는 투자를 받기 위해 무려 150번이나 전화를 한다.

모든 역량을 사업에 집중하고 걸림돌은 가차 없이 제거한다. 무능한 임직원에게는 면전에서 독설을 퍼붓고 해고한다. “집중이란 집중할 것에 ‘예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좋은 아이디어 수백개에 ‘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혁신이란 1000가지를 퇴짜놓는 것”이라고 그의 어록에 적혀 있다.

잡스가 자기 회사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세우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법과 제도를 벗어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란 암시다. 스스로 가정을 꾸릴 형편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때 임신한 여자친구를 가차 없이 버리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아니라 제품에만 관심을 둔다”는 워즈니악의 대사가 잡스의 정체성을 집약해준다.

할리우드 로맨틱가이 커처의 싱크로율이 의외로 높다. 외모만 닮은 게 아니라 걸음걸이나 제스처 등도 잡스를 빼다 박았다는 평가다. 촬영 기간에는 잡스처럼 채식만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한다. 커처는 한 인터뷰에서 “잡스의 특징은 목표만을 바라보는 성격과 다른 사람들이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라며 “이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