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포퓰리즘'의 역습…美, 연금 주느라 재정 고갈
25일(현지시간) 새 학기를 시작한 미국 시카고 어린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정들었던 친구들과 이별하고 낯선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카고 당국이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난달 2000여명의 교사·교직원을 해고하고 50여개 초등학교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유럽의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북부 주요 도시 폴토로 가는 약 300㎞의 고속도로가 텅 비어 있다. 남부 유럽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이 곳곳에 펼쳐져 있지만 비싼 도로 사용료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복잡하고 먼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대폭 올린 탓이다.

두 곳에서 벌어진 황당 사건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비슷하다는 분석이다. 인기에 영합한 정부의 무분별한 지출이다. 시카고는 교육 공무원에게 연금을 주느라 학교를 운영할 돈이 없다. 포르투갈은 지방자치단체 구미에 맞추려고 쓸데없는 곳까지 고속도로를 지었다.

시카고 사태는 미국 중앙정부와 시카고 당국의 공동 책임이다. 미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엄청난 빚을 내 시장에 돈을 풀었다. 이미 법이 정한 정부부채 한도를 다 쓴 상태다. 내달 말까지 민주·공화 양당이 정부 부채 한도 확대에 합의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폐쇄된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명 ‘오바마 케어’ 등 건강보험 확대에도 적잖은 돈을 썼다. 미 의회 예산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3.4%였던 정부부채는 2037년 35.7%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정부의 세입(稅入)은 GDP의 18% 수준이다. 차액만큼 재정적자가 나는 구조다.

결국 중앙정부가 지방에 주는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카고 자체의 복지 부담도 엄청나다. 올해 은퇴 교사들에게 줘야 하는 연금 액수만 전년 대비 4억400만달러가 늘어난다. 클라리스 베리 시카고 교장연합회장은 “은퇴자에게 연금을 주려고 아이들의 교과서를 뺏어야 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포르투갈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포르투갈에서 고속도로 300㎞를 달리려면 사용료만 22유로(약 3만3000원)를 내야 한다. 정부가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엄청난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1986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960억유로의 개발지원금을 받았다. 문제는 이 돈의 4분의 1 정도를 도로 건설에만 쓴 것이다. 산업체들에 유용한 철도나 공장 건설 등에 쓴 돈은 이보다 훨씬 적었다. “리스본과 우리 도시를 이어달라”는 지자체의 요구를 무리하게 수용한 탓이다. 결과적으로 납세자들이 70억유로를 추가 부담해야 할 처지지만 구제금융까지 받고 있는 포르투갈이 추가 세금을 걷기도 어렵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제 발전에 쓸 돈을 도로에만 쏟아부었다”며 “무리한 정부지출이 유령 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