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내년 7월 통합하기로 하는 내용의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27일 발표했다. 서울 여의도 정책금융공사 건물에 통합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내년 7월 통합하기로 하는 내용의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27일 발표했다. 서울 여의도 정책금융공사 건물에 통합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산은·정책금융公 재통합] 5년 만에 정책 실패 자인…시간·비용 낭비 누가 책임지나
정부가 27일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5년 전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한 것과 정책금융공사를 분리한 것이 실패였다고 자인한 셈이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구상했던 핵심 금융정책 중 하나였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하고, 산업은행을 기업공개해 얻게 되는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중소기업 지원에 써 일석이조를 노리겠다는 정책이었다.

곽승준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창용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도했다. 이 전 부위원장은 2008년 6월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며 “산업은행이 정책금융 기능을 주로 맡았지만 여건만 마련된다면 국제적인 투자은행으로 도약할 자질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민영화를 하려다 보니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살릴 필요가 있었다. 정책금융공사가 설립된 배경이다. 2009년 4월 진통 끝에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정책금융공사법이 공포됐다. 당시 직함을 기준으로 이 부위원장, 노대래 기획재정부 차관보, 안현호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장, 김영기 산업은행 이사 등이 정책금융공사 설립위원회를 꾸렸다. 그해 10월 공사가 설립됐다.

산업은행을 두 개의 조직으로 분리했지만 상황은 당초 생각과 다르게 돌아갔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업은행 기업공개(IPO)라는 구상이 자꾸만 미뤄졌다. 소매금융 기능이 없어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점, 정책금융 수요가 커지는 점 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정책금융공사는 공사대로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민영화를 앞둔 산업은행의 부실자산 등을 떠안아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는 구조였다. 산업은행 민영화가 늦어지면서 정책금융을 산업은행도 하고 정책금융공사도 하는 ‘쌍둥이 체제’가 지속됐다.

5년 만에 두 기관이 통합하는 것은 통합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는 있다. 하지만 두 기관이 처음부터 분리되지 않았더라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에 따르면 두 기관이 그동안 쓴 돈은 최소한 2500억원이다.

산업은행은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소매금융 지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비용(160억원), 신규인력 인건비(81억원), 지주사 설립에 따른 통합전산망 구축(465억원) 등에 706억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정책금융공사도 전산망 구축 등에 700억원을 썼다. 인건비와 용역비 등을 합치면 1800억원가량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정책금융공사채권과 산업금융채권을 따로 발행하는 데 사용했던 비용 등을 감안하면 낭비된 돈은 2500억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가 결정한 것을 집행하는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당시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이미 요직을 떠났기 때문에 마땅히 책임을 질 사람이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