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멋대로 사용 땐 그만큼 삭감
#1. 안전행정부는 지난해 세종시 이전 과정에서 의무실 등 필수시설에 들어갈 물품 구입 목적으로 편성된 예비비 21억3200만원 가운데 2억2500여만원을 귀빈실 집기를 사는 데 썼다. 예산을 당초 편성 목적과 상관 없는 곳에 쓴 것이다.

#2.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5억4000만원을 들여 해양신고 시스템(122시스템) 확대 구축을 추진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양경찰청은 다른 예산 항목에서 이 돈을 끌어왔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2012 회계연도 결산 집중분석’ 보고서에서 공개한 정부 부처의 ‘예산 무단 전용’ 사례다.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결산을 분석한 결과 정부 부처들이 국회가 짜준 예산을 무시하고 임의로 신규 사업을 만들거나 계획을 바꿔 예산을 집행한 사례가 25개 부처(청 단위 포함), 46건에 달했다.

이에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멋대로 사용하는 부처에는 다음 연도 예산 편성 때 그에 상응하는 금액만큼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9일 “지난해 결산 결과 등을 감안해 예산 목적 외 사용에 대해서는 페널티(벌칙)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지금도 그런 경우에는 일부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확실하고 강하게 벌칙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 이 같은 방침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특히 예상치 못한 예산 지출이나 예산 초과 지출에 대비하기 위해 편성한 예비비가 정부 부처들이 예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편법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예비비 지급 요건을 엄격히 정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 부처들이 예산을 당초 목적과 달리 멋대로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8가지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신규 사업을 추진하거나 사업의 주요 내용을 변경해 예산을 늘리거나 줄이는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예산 무단 사용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예산의 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부처들이 이처럼 편법적으로 예산을 쓰는 것은 제재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주용석/허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