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오른쪽)가 1994년 6월 ‘현대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와 서울 강남교보타워 건축설계를 협의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대산은 건축에도 조예가 깊었다.  /교보생명 제공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오른쪽)가 1994년 6월 ‘현대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와 서울 강남교보타워 건축설계를 협의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대산은 건축에도 조예가 깊었다. /교보생명 제공
시인 신달자, 건축가 황두진, 문화평론가 백낙청,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박준영 전남지사, 가수 하춘화 씨….

4일 오후 6시 교보생명보험 창업주인 대산(大山) 신용호 회장 10주기 추모의 밤 행사차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모이는 인사들의 면면이다.

2003년 9월 86세를 일기로 타계한 신 회장은 ‘한국 보험산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생명보험업 외길을 걸은 성공한 기업가로 기억되지만 사실 그의 인생을 관통한 키워드는 교육이다. 1958년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들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달아오르는 국민들의 교육열을 보고 보험으로 인재 양성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교육보험은 30년간 300만명에게 학자금을 지급했고 보험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탔다. 세계보험협회는 그 공적을 기려 1997년 ‘신용호 세계보험학술대상’을 만들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교보문고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지식 축적 없이는 개발도상국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한 해 도서판매량 5000만권, 방문객 4000만명의 한국 대표 지식문화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별난 책 사랑은 성장 과정에서 비롯됐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여덟 살 때 폐렴을 앓아 취학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무학의 소년’을 일으켜 세운 건 독서였다.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 10대 후반에는 ‘1000일 독서’를 하기도 했다. 교보문고를 연 뒤 직원들에게 내린 지시에서 그의 철학이 드러난다. ‘책을 훔쳐가더라도 도둑 취급을 해 절대 망신을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타이를 것’.

1991년 등장해 문화 아이콘이 된 시심 가득한 ‘광화문 글판’ 역시 신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자’는 그의 지시에 따라 계절과 호흡하는 감성적 글귀로 희망과 용기를 말하고 있다. 여러 공익재단도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그의 기업관을 말해준다. 대산농촌문화재단은 민간이 만든 유일한 농업 관련 재단이다. 오는 19일 10주기를 앞두고 한국보험학회는 이날 학술심포지엄도 연다. ‘이윤 추구는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던 기업가 신용호를 재조명하는 행사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