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재부의 '조변석개'
“국가경쟁력 평가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순위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4일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6계단 하락(148개국 중 25위)했다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발표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가항목 중 설문조사 비중이 3분의 2를 넘어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설문대상은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 516명. 그러나 회수된 답변은 85개에 그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평가항목에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지표들이 반영됐다고도 했다. 대표적으로 꼽은 게 이동전화 이용자 수다. 선불폰 이용자가 적은 한국의 통신환경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 기재부 관계자는 “상당수 선진국들은 WEF가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결과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며 “WEF 순위가 떨어졌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가 줄어드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위 하락 요인으로 북핵 문제도 집어넣었다. 올해 설문을 실시한 4~5월을 전후해 북한 3차 핵실험 이슈가 터지는 바람에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겼다는 것.

하지만 순위가 5계단 올랐던 작년(19위)과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는 점에서 기재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WEF 회장이 한국의 순위 상승을 축하하는 서한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자 기재부는 “이번 결과로 한국의 국가경쟁력 제고와 위상 강화를 재확인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또 다른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인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한국 순위가 사상최고로 나왔을 때도 정부는 호들갑을 떨었다. 2011년 당시 한 관계자는 “개발도상국 중 상당수가 WEF나 IMD의 자료를 참고해 국정 운영방향을 결정하고 있다”며 “한국엔 고무적인 소식”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재부가 이날 WEF의 평가결과를 애써 폄하한 것은 외부 평가를 조변석개(朝變夕改)식으로 활용하는 정책 당국의 얄팍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특히 나름의 권위를 갖고 있으면서 한국 언론들도 비중 있게 다뤄온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을 갑자기 ‘선진국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한낱 사설기관으로 전락시킨 대목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외부의 평가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 말을 곧이 듣겠는가.

고은이 경제부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