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린다…끌고 떠나고 싶다…'여행 본능' 루이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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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스타일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이 6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특별 전시됐다. 최고급 가죽에 금을 입혀 만든 그물침대, LED 조명이 빛나는 여행용 캐비닛, 누에고치를 닮은 접이식 흔들의자 등 전시 제품 주제는 여행이다. 여행에 대한 본능과 동경, 즐거움을 주제로 디자인한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컬렉션이다. 가방을 대표 상품으로 하는 루이비통의 여행 본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해 12월부터 프랑스 영국 미국 중국 등 8개 나라에서 전시됐고 한국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여행의 예술’을 추구
1984년 한국에 진출한 루이비통은 국내 명품시장 부동의 1위다. 간판 제품인 ‘스피디 백’은 길에서 3초에 한 번씩 보일 정도로 많이 팔렸다 해서 ‘3초 백’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 하지만 루이비통은 스스로 정체성을 ‘여행의 동반자’이자 ‘여행 예술의 대명사’라고 표현한다. 1854년 탄생 이래 160년 동안 줄곧 여행을 화두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목공소를 운영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창업자 루이 비통(1821~1892)은 14세 때 파리로 옮겨와 귀족들 여행 짐을 꾸려주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천이 길게 늘어지고 화려한 드레스가 유행이었다. 귀족들은 여행 때마다 마차에 트렁크를 수십개씩 싣고 다녔다. 비통은 귀한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짐을 잘 싸기로 유명해 왕족들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사회가 근대화하면서 여행이 늘어나는 점에 주목한 그는 100% 가죽 여행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1854년 파리에 매장을 냈고, 이것이 루이비통 역사의 시작이다.
‘트렁크 제국’을 건설
루이비통의 발전사는 여행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철도시대에 접어든 1858년, 이 브랜드는 세계 최초로 윗면이 평평한 플랫 트렁크를 내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트렁크들은 뚜껑이 반원형이어서 여러 개를 쌓기가 어려웠는데,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 낯선 국가로 떠나는 오지 탐험가가 많아지던 1868년에는 알루미늄과 아연으로 덮은 밀폐형 방수 트렁크를 출시했다. 1875년엔 옷을 걸어서 수납하는 의상 트렁크를 처음 선보였다. 장기간 여행 때도 옷을 구김 없이 보관할 수 있어 크루즈 탑승객들에게 사랑받았다. 1890년엔 여러 가방의 잠금장치를 하나의 열쇠로 여는 고정 잠금쇠 방식을 개발했다. 루이비통의 상징인 ‘LV’ 로고가 탄생한 것도 이때쯤이다. 루이비통의 혁신적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짝퉁’이 기승을 부렸고, 창업자 아들 조르주 비통이 1896년 위조 방지 차원에서 이 로고를 고안해낸 것. 아버지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L과 V, 그리고 꽃과 별을 활용해 고유의 아름다운 무늬를 완성했다.
세대를 잇는 명성
20세기 초 자동차의 등장으로 여행은 더 폭발적으로 늘었고, 루이비통의 여행가방은 다양해졌다. 1900년 전후로 먹거리를 보관할 수 있는 피크닉 트렁크와 단거리 여행에 적합하게끔 장갑 타이 손수건 등의 수납공간을 갖춘 소가죽 트렁크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1924년 탄생한 ‘키폴’은 루이비통의 ‘드는 가방’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제품. 여벌의 여행용 가방이었던 키폴은 실용성과 함께 현대적 디자인을 강조했다. 1930년대에는 샴페인을 보관하기 위한 ‘노에’와 키폴을 핸드백 형태로 바꾼 ‘스피디 백’이 등장했다. 이들 가방은 그 뒤로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루이비통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원한 ‘여행 DNA’
루이비통은 1987년 주류업체 모에헤네시와 합병, LVMH그룹으로 거듭났다. 1997년에는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해 의류에서 신발 시계 보석까지 전방위로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여행은 루이비통의 변치 않는 ‘DNA’와 같다.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엔 지금도 ‘1854년 설립된 파리의 트렁크 제조사’라고 붙어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의 긴 여정”이라는 루이비통의 속삭임은 오늘도 수많은 이의 여행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루이비통에는 고객 주문에 따라 장인들이 어떤 물건이든 제작해 주는 ‘스페셜 오더’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딱 하나 조건이 있다. ‘이동 가능한 제품’만 만든다는 것. 여행을 돕는 제품을 만드는 게 브랜드 철학인 만큼 붙박이 가구는 아무리 VIP라 해도 거절한다고 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여행의 예술’을 추구
1984년 한국에 진출한 루이비통은 국내 명품시장 부동의 1위다. 간판 제품인 ‘스피디 백’은 길에서 3초에 한 번씩 보일 정도로 많이 팔렸다 해서 ‘3초 백’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 하지만 루이비통은 스스로 정체성을 ‘여행의 동반자’이자 ‘여행 예술의 대명사’라고 표현한다. 1854년 탄생 이래 160년 동안 줄곧 여행을 화두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목공소를 운영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창업자 루이 비통(1821~1892)은 14세 때 파리로 옮겨와 귀족들 여행 짐을 꾸려주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천이 길게 늘어지고 화려한 드레스가 유행이었다. 귀족들은 여행 때마다 마차에 트렁크를 수십개씩 싣고 다녔다. 비통은 귀한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짐을 잘 싸기로 유명해 왕족들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사회가 근대화하면서 여행이 늘어나는 점에 주목한 그는 100% 가죽 여행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1854년 파리에 매장을 냈고, 이것이 루이비통 역사의 시작이다.
‘트렁크 제국’을 건설
루이비통의 발전사는 여행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철도시대에 접어든 1858년, 이 브랜드는 세계 최초로 윗면이 평평한 플랫 트렁크를 내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트렁크들은 뚜껑이 반원형이어서 여러 개를 쌓기가 어려웠는데,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 낯선 국가로 떠나는 오지 탐험가가 많아지던 1868년에는 알루미늄과 아연으로 덮은 밀폐형 방수 트렁크를 출시했다. 1875년엔 옷을 걸어서 수납하는 의상 트렁크를 처음 선보였다. 장기간 여행 때도 옷을 구김 없이 보관할 수 있어 크루즈 탑승객들에게 사랑받았다. 1890년엔 여러 가방의 잠금장치를 하나의 열쇠로 여는 고정 잠금쇠 방식을 개발했다. 루이비통의 상징인 ‘LV’ 로고가 탄생한 것도 이때쯤이다. 루이비통의 혁신적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짝퉁’이 기승을 부렸고, 창업자 아들 조르주 비통이 1896년 위조 방지 차원에서 이 로고를 고안해낸 것. 아버지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L과 V, 그리고 꽃과 별을 활용해 고유의 아름다운 무늬를 완성했다.
세대를 잇는 명성
20세기 초 자동차의 등장으로 여행은 더 폭발적으로 늘었고, 루이비통의 여행가방은 다양해졌다. 1900년 전후로 먹거리를 보관할 수 있는 피크닉 트렁크와 단거리 여행에 적합하게끔 장갑 타이 손수건 등의 수납공간을 갖춘 소가죽 트렁크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1924년 탄생한 ‘키폴’은 루이비통의 ‘드는 가방’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제품. 여벌의 여행용 가방이었던 키폴은 실용성과 함께 현대적 디자인을 강조했다. 1930년대에는 샴페인을 보관하기 위한 ‘노에’와 키폴을 핸드백 형태로 바꾼 ‘스피디 백’이 등장했다. 이들 가방은 그 뒤로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루이비통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원한 ‘여행 DNA’
루이비통은 1987년 주류업체 모에헤네시와 합병, LVMH그룹으로 거듭났다. 1997년에는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해 의류에서 신발 시계 보석까지 전방위로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여행은 루이비통의 변치 않는 ‘DNA’와 같다.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엔 지금도 ‘1854년 설립된 파리의 트렁크 제조사’라고 붙어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의 긴 여정”이라는 루이비통의 속삭임은 오늘도 수많은 이의 여행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루이비통에는 고객 주문에 따라 장인들이 어떤 물건이든 제작해 주는 ‘스페셜 오더’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딱 하나 조건이 있다. ‘이동 가능한 제품’만 만든다는 것. 여행을 돕는 제품을 만드는 게 브랜드 철학인 만큼 붙박이 가구는 아무리 VIP라 해도 거절한다고 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