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개구리', 아테네·서울 꿰맞춘 '억지춘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리뷰
헛헛한 웃음만이 흘렀다.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뮤지컬 ‘영웅’의 비장한 노래와 ‘레미제라블’의 선동적인 멜로디, 조용필의 흥겨운 ‘바운스’ 등에 터져 나오는 객석의 웃음은 잠시 머무를 뿐이다. 중간중간 분출되는 무대의 에너지는 서로 통합되지 못한 채 파편처럼 흩어진다. 당대 사회와 현실에 대한 조롱과 풍자는 겉핥기 수준에 그친다. 희극의 본질인 통렬한 웃음과 날카로운 풍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립극단이 기획·제작하고 박근형 연출가가 각색·연출해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개구리’(사진)는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동명 원작에 ‘지금의 시대’를 담아내려고 애쓴다. ‘2500년 전 아테네’를 ‘2013년 대한민국’으로 바꾼다.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리스 신화와 세계관, 현실을 섞어 만들어낸 이야기 구조와 ‘오늘의 한국 상황’과의 조합은 서로 융화하지 못하고 곳곳에 서투른 흔적을 남긴다.
원작은 이렇다.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는 쇠락하는 아테네를 구원하기 위해 저승에 있는 ‘위대한 비극 시인’ 중 한명을 데려오기로 한다. 그는 제자 크산티네스와 함께 뱃사공 카론의 거룻배를 타고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강을 건너 우여곡절 끝에 저승에 도착한다. 저승의 지배자 플루톤의 주재로 이승에 갈 시인을 뽑는 선발전이 벌어진다. 두 후보인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논쟁과 실연을 벌인다.
공연은 삼촌과 조카 사이인 신부와 동자승을 등장시킨다. 이들은 이 세상에 희망을 불어줄 ‘그분’을 모셔오기 위해 이승과 저승 사이 강을 건너고, 송장 개구리들과의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이고, 모진 고문을 이겨낸 후 염라대왕이 지배하는 저승 문턱에 도착한다. 저승에서는 비극의 실연 대신 ‘춘향전’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따라갈 만하다. 극은 후반부에서 무너진다. 원작의 백미인 날카롭고 깊이 있는 문예비평을 각각 자살과 타살로 삶을 마감한 두 전직 대통령 간의 낡고 해묵은 정치·과거사 논쟁으로 대체한다. 둘 중 한명은 신부가 모시고 오려는 ‘그분’이다. 비극 시인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우리 시대에선 그렇게 찾기 어려웠을까. 결국 극은 ‘그분’ 대신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며 동자승의 어머니를 데려오기로 하고 다 같이 ‘희망가’를 부르며 끝난다. 뭔가 잔뜩 펼쳐 놓은 것에 비하면 허무한 결말이다.
당대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현실을 개선하려는 원작자의 의지는 온데간데없다. “말터이다, 말터이다”를 외치는 춘향이의 무지막지한 모습만이 여운으로 남는다. 고전 희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했지만 처음부터 잘못 꿰맞춘 무대였다.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1만~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국립극단이 기획·제작하고 박근형 연출가가 각색·연출해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개구리’(사진)는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동명 원작에 ‘지금의 시대’를 담아내려고 애쓴다. ‘2500년 전 아테네’를 ‘2013년 대한민국’으로 바꾼다.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리스 신화와 세계관, 현실을 섞어 만들어낸 이야기 구조와 ‘오늘의 한국 상황’과의 조합은 서로 융화하지 못하고 곳곳에 서투른 흔적을 남긴다.
원작은 이렇다.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는 쇠락하는 아테네를 구원하기 위해 저승에 있는 ‘위대한 비극 시인’ 중 한명을 데려오기로 한다. 그는 제자 크산티네스와 함께 뱃사공 카론의 거룻배를 타고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강을 건너 우여곡절 끝에 저승에 도착한다. 저승의 지배자 플루톤의 주재로 이승에 갈 시인을 뽑는 선발전이 벌어진다. 두 후보인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논쟁과 실연을 벌인다.
공연은 삼촌과 조카 사이인 신부와 동자승을 등장시킨다. 이들은 이 세상에 희망을 불어줄 ‘그분’을 모셔오기 위해 이승과 저승 사이 강을 건너고, 송장 개구리들과의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이고, 모진 고문을 이겨낸 후 염라대왕이 지배하는 저승 문턱에 도착한다. 저승에서는 비극의 실연 대신 ‘춘향전’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따라갈 만하다. 극은 후반부에서 무너진다. 원작의 백미인 날카롭고 깊이 있는 문예비평을 각각 자살과 타살로 삶을 마감한 두 전직 대통령 간의 낡고 해묵은 정치·과거사 논쟁으로 대체한다. 둘 중 한명은 신부가 모시고 오려는 ‘그분’이다. 비극 시인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우리 시대에선 그렇게 찾기 어려웠을까. 결국 극은 ‘그분’ 대신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며 동자승의 어머니를 데려오기로 하고 다 같이 ‘희망가’를 부르며 끝난다. 뭔가 잔뜩 펼쳐 놓은 것에 비하면 허무한 결말이다.
당대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현실을 개선하려는 원작자의 의지는 온데간데없다. “말터이다, 말터이다”를 외치는 춘향이의 무지막지한 모습만이 여운으로 남는다. 고전 희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했지만 처음부터 잘못 꿰맞춘 무대였다.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1만~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