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대 국내외 자산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53) 사건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고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 회장 측은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용관) 심리로 열린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중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를 배임 혐의로 합쳐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일본 도쿄의 빌딩 구입 비용을 신한은행에서 대출받는 과정에서 CJ 일본법인인 CJ재팬 소유 건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CJ재팬이 연대보증을 서도록 해 각각 244억4000여만원을 횡령하고 569억2000만원 상당의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김앤장·광장 변호사들이 포진한 변호인단은 그러나 “검찰이 근저당권 설정과 연대보증을 각각 횡령과 배임으로 나눠 기소했는데 두 행위 모두 배임 혐의로 합쳐서 봐야 한다”며 “검찰이 산정한 횡령·배임액도 기소 때가 아니라 구입 당시 환율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변호인단의 계산대로라면 배임 액수는 569억2000만원에서 391억5000만원으로 177억7000만원 줄어든다.

재판부도 검찰의 법리 적용을 따졌다. 김용관 재판장은 “하나의 대출행위에 물적담보를 제공하고 연대보증했으면 하나의 행위 아닌가. 별개의 죄로 계산하면 이중계산 아닌가. 횡령·배임을 배임죄 하나로 묶는 게 순리 같다”고 지적했다. “금액을 뻥튀기하려는 게 아니라 행위 자체가 별개”라는 검찰의 반박에 재판부는 재차 배임으로 묶을 것을 권유했다.

변호인단은 또 하대중 전 CJ E&M 대표에게 서울 한남동 빌라를 인센티브로 제공한 것과 관련한 의혹도 문제 삼았다. 검찰은 중국·인도 등 해외법인에서 급여를 준 것처럼 꾸며 115억여원을 횡령했다고 기소했지만 이 회장 측은 “해외법인의 급여 지급은 정산과정에 불과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의 건강상태와 관련, 변호인단은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2~3주 간격으로 4회가량 공판준비기일을 더 열어달라”는 변호인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이 끝나는 11월28일 이전까지 공판준비를 마치기로 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