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김성률 기자]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를 63회까지 연재하면서 가장 많은 기사가 나간 곳은 역시 인수봉이다. 동양길에서 시작하여 이번 여정길까지 무려 31회가 나갔으니 거의 5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인수봉은 선인봉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클라이머들이 등반하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바윗길도 80여개에 이르고 접근성 또한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수봉의 대표적인 바윗길 중에서는 가로길(5.11c), 에코길(5.11d), 알핀로제스(5.11c), 생공사(5.11a), 학교A(5.12a), 학교B(5.11d) 등 비교적 난이도가 센 바윗길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두 개의 바윗길이 더 있으니 그것은 여정길과 우정길이다. 우정길은 이제 클라이밍을 시작한 젊은 클라이머를 위해 비워두었고 여정길은 ‘태숙·말숙 씨’로 불리는 여성2인조가 개척한 길이어서 여성클라이머가 선등을 설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여섯 마디로 이루어진 여정길의 크럭스는 역시 첫째 마디다. 난이도는 5.10c정도지만 완력만으로는 쉽게 등반할 수 없는 까다로운 바윗길로 손꼽힌다. 기본적으로 레이백과 스테밍은 물론 푸시 등의 동작이 정확하게 구현되어야 등반을 마무리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드프리 코스로 자주 사용되는 관계로 바위 또한 무척 미끄러워 발디딤 또한 정확해야 한다.

여정길 바로 오른쪽에는 역시 하드프리 방식의 등반이 자주 이루어지는 짬뽕길을 비롯해서 하드 프리를 위한 단피치길들이 줄느런하고 갤러리들도 항상 많은 편이서 심리적인 부담이 덤으로 따라온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빌라길 둘째 마디 5.12a난이도를 어렵지 않게 등반하는 선등자가 여정길 첫째 마디에서 끙끙대며 어렵게 등반하는 것은 그래서 아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정길 첫째 마디를 온사이트로 등반 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분명 5.11급 이상의 클라이머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9시, 도선사 주차장에서 만난 취재팀은 1시간을 걸려 인수봉 남면 여정길에 도착했다. 여정길 왼쪽으로는 청맥길, 동양길, 학교b등 인기 있는 바윗길들이 위치해 있다. 그런데 막상 여정길 앞에 서니 수원에서 올라온 등반팀 5명이 선등자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팀은 이들의 등반을 기다리며 부득이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리게 되었다.

온사이트로 여정길을 등반한다는 앞 팀의 선등자는 첫째 볼트에 퀵드로를 무사히 걸고 잡기 좋은 직상 크랙을 레이백 자세로 잡은 다음 둘째 볼트에 퀵드로를 거는데 까지 성공했으나 셋째 볼트에 퀵드로를 거는 데에는 실패한다. 결국 볼트 따기 방식으로 등반을 했는데 후등자들 역시 반칙을 쓰면서도 어렵게 등반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여정길 등반 모습을 바라보는 갤러리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다. 산악인들의 등반자 특히 선등자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다. 선등자는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등반을 하는데 자신과 같은 팀이 아니라고 해서 시끄럽게 떠들며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태도인 것이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자, 소개가 많이 늦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민은주 클라이머(34, 아트클라이밍). 등반 하는 모습이 유연하고 멋질 뿐 아니라 외모 또한 그에 버금갈 정도여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인어아가씨’.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목각 은주’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목각처럼 얼굴표정의 변화가 없어서 오래 전에 붙은 별명이란다. 가냘프게 보이는 몸매에 아직도 20대 초,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가 오늘 ‘태숙 씨·말숙 씨’로 대표되는 여정길의 개척자를 생각하며 전 피치 등반에 나서는 것이다.

민은주 클라이머는 때로 폭설이 내려 입산통제가 된 지리산을 홀로 오르는가 하면 동년배의 여성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처럼 어느 날 불쑥 해외여행을 나서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본격 인터넷 클라이밍매거진이랄 수 있는 ‘클라임 몬스터’의 대표이기도 하다. 클라이밍에 대한 다양한 영상과 사진, 만화, 장비리뷰 등을 다루고 있는 이 매체는 아직 수익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재능기부식으로 편집되는 내용이 무척 특이하면서도 기발하다. 민은주 씨는 이 매거진에 직접 그린 ‘오르Rock’이라는 재기발랄한 만화를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일요일 정오가 다 된 시간, 드디어 그가 자일을 묶고 여정길 첫째 마디를 출발 한다. 모처럼 시원해진 날씨를 맞아 이날 인수봉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클라이머들이 몰려 거의 모든 바윗길에는 등반자들이 오보룩이 매달려 있다. 여정길 주변에는 약 20여 명의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대기하거나 등반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 심리적인 부담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주변의 클라이머들이 민은주 클라이머의 등반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첫 발을 뗀다. 빌레이는 민 클라이머가 운동을 하고 있는 아트클라이밍의 김종오 센터장이 맡았다. 아트클라이밍에서는 민 클라이머의 등반을 격려하고자 김종오 센터장과 이민재 클라이머가 빌레이를 봐주는 것은 물론 조오종 씨와 최승찬 씨가 별도의 팀을 구성해서 여정길과 크로니길을 따라 바로 뒤와 옆에서 함께 등반했다. 자주 얼굴을 봐오며 운동을 함께 해온 등반자와 빌레이어만큼 호흡이 잘 맞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선등자의 마음이 든든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민 클라이머는 오른손을 크랙에 넣어 확실하게 잡고 역시 오른 발을 생각보다 높이 올려 하이킥으로 걸고 몸을 올려 왼발을 딛는다. 동작은 생각보다 큰 편이었다. 첫 볼트에 이르기 전 차분하게 양손에 초크를 묻힌 다음 크랙을 잡고 일어서 첫 번째 볼트까지 안전하게 진입했다.

첫째 볼트를 떠난 그의 오른발은 이번에도 허리 가까이 높이 올려 오른쪽으로 병렬로 나있는 크랙의 반발 정도 오른쪽을 짚고 두 손을 오른쪽 크랙에 집어넣은 다음 바로 오른발과 왼발을 빠른 속도로 올려 디뎠다. 여기서 잠시 자세를 바로 잡은 다음에 다시 왼발을 왼쪽으로 뻗어 오른손은 오른쪽 크랙에, 왼손은 왼쪽 크랙에 넣고 안정된 자세에서 두 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었다.

큰 대 자로 서있던 민 클라이머는 다시 오른 손을 왼손 있는 크랙으로 옮기고 오른발도 왼쪽 크랙으로 옮기는 동작을 정확히 해내며 무게 중심을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오른쪽 크랙을 이용한 등반을 마친후 다시 원래의 크랙으로 이동한 것이다. 여기서 레이백 자세로 등반하여 셋째 마디에 퀵드로를 건다.

이 지점에서 한번 손을 털어주고 호흡을 가다듬은 민 클라이머는 오른 발을 올려 벽을 지탱한 다음 왼발을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시킨 후 침니 안으로 두 발을 집어넣고 캠을 설치했다. 세 번째 볼트와 캠을 설치하는 구간 사이는 무척 미끄럽고 자세가 잘 나오지 않는데도 서두르지 않고 정확한 자세로 등반을 이어간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캠에 자일을 건 민 클라이머는 이번에는 다시 스태밍으로 자세를 변환시킨 후 레이백으로 등반을 하고 마지막 볼트에 퀵을 건 다음 끝까지 신중하게 견고한 레이백 자세를 유지한 채 확보지점까지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터져 나온 소리 "완료!" 여정길 인근이 조용해 질 정도로 긴장된 시간이었지만 민은주 클라이머는 조금도 서두르거나 당황하는 일 없이 첫 번째 마디를 깔끔하게 완등해냈다.

이 대목에서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 한다. 남성 클라이머들도 만만치 않은 여정길 첫째 마디를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않고 차분하게 등반을 해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등반경력 6년차인 민은주 씨는 미술학도 출신으로 등반입문 1년만에 아미동길을 선등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일로 한 두 차례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하드 프리는 간현암장의 YS길(5.12b)을 등반해내는 실력에 인수봉에서는 남자들도 어렵다는 취나드A를 포함한 10여 개의 바윗길을 선등한 경험이 있다.

뒤에서 따라오는 응원팀의 빌레이를 봐준 등반팀은 앞팀의 등반이 모두 마치기를 기다려 다시 둘째 마디를 출발한다. 둘째 마디는 5.9난이도의 슬랩이지만 볼트 거리가 멀어 심리적인 부담이 되는 곳이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확보지점의 오른쪽을 등반루트로 잡은 민은주 클라이머는 우측으로 한두 발을 옮기고 몸을 올려 슬랩을 타기 시작한다. 이때 등반선을 살피는 그의 눈매가 잠시 번쩍이는 듯했다. 클라이머들은 대부분 평소에 무척 선한 눈매를 하고 있지만 등반할 때, 특히 등반난이도가 최고조에 이르러 등반을 해서 올라가거나 아니면 떨어지느냐의 긴박한 순간에 이르러서는 때로 매서운 눈매로 바뀌기도 한다.

민은주 클라이머의 장점은 역시 차분함이었다. 등반이 어렵거나 쉽거나 상관없이 등반속도가 일정하고 잠시 쉴 때마다 양 손에 번갈아 초크를 묻히며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넋을 잃고 등반모습을 바라보자니 금방 30미터에 이르는 둘째 마디 등반을 끝내고야 말았다.

여정길 셋째 마디는 흔히 동남면 대침니라고 부르는 침니구간의 왼쪽에 있는 슬랩구간이다. 둘째 마디 확보지점에서 루트 파인딩을 한 등반팀은 약 40미터나 되는 긴 등반선을 확인하고 서는 놀라고야 만다. 확보점을 출발하여 왼쪽으로 10여 미터를 이동하여 첫 볼트를 거는데다가 등반거리도 40미터로 길어서 난이도는 5.9라고는 하지만 등반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정길을 개척할 당시인 1970년도에 여정산악회의 태숙 씨와 말숙 씨는 이 슬랩으로 등반이 가능했을까? 첫째 마디를 인공등반으로 올랐다면 다른 길이 없는 둘째 마디는 그렇다치더라도 셋째 마디는 동남면대침니로 등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도진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이 대목에서 인수봉 건양길의 개척자인 함기철 대장은 전혀 새로운 의견을 개진했다. 대침니 중간 크로니길과 교차하는 구간부터 정상까지의 여정길, 즉 셋째 마디에서 인수봉 정상까지 가는 길은 함 대장과 이종호씨와 1986년 함께 개척한 건양B길이라는 것이다. 1970년도라면 분명 대침니를 통해 등반을 했다는 것이다.

여정길의 개척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현재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힐 방법은 없다. 그러나 바윗길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한다. 여정길은 오랫동안 여정길로 불리며 사랑받아왔기 때문에 함 대장의 의견이 수렴되기 위해서는 여정길의 개척자를 찾는 수밖에 없기도 하다.

둘째 마디 확보지점을 출발한 민은주 씨는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10여 미터를 트레버스 한 다음 첫 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두 팔을 어깨 넓이보다도 훨씬 넓게 벌려 작은 홀드를 꼬집듯이 잡고 상체를 잔뜩 숙인 상태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확하고 안정적인 등반을 추구하는 그는 역시 작은 슬립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정확한 동작으로 등반하는 그의 등반모습은 클라이밍교본의 삽화를 보는 듯하다.

셋째 마디까지 등반을 마쳤으니 이제 여정길은 중반을 넘어선다. 넷째 마디 크랙 구간을 등반하게 되는 것이다. 암장운동을 꾸준히 해온 민은주 씨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크랙등반이 수월할 것 같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스스로 생각할 때 평소 성격은 조용한 편”이라는 그는 어떻게 등반을 할 때 대범한 클라이머로 변신하는 것일까? 사실 기자와 민은주 씨는 블로그 이웃으로 만났다. 시니컬하면서도 재치있는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아서 인문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술학도여서 놀라게 되었다. “자신의 사진 중 눈 풀리고 웃기는 사진이 가장 좋다”는데 이번 등반에서는 너무 긴장한 탓일까. 그런 사진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도 하다.

지금은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등반을 잘하는 민은주 씨. 그러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빛나는 클라이머가 된 것은 아니다. 6년여 동안의 기간 동안 전국의 암장이라는 곳은 거의 모두 찾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드프리 등반과 멀티 피치 등반에 집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 마냥 행복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9년 8월에는 인수리지 등반을 끝내고 인수봉 정상에서 하강하던 중에 오버 부근에서 긴 머리카락이 8자 하강기에 끼어 허공에서 머리카락을 왕창 잘리게 되는, 말로만 듣던 일을 몸소 경험하기도 했다. 다른 클라이머들처럼 그도 발목부상을 당해 한동안 등반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천재적인 클라이머’라기 보다는 바위에서 즐기고 노는 사이에 완성된 ‘생활형 클라이머’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그의 등반 여정은 앞으로도 창창하게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넷째 마디는 첫 번째 볼트와 둘째 볼트 사이의 거리가 20여 미터는 되어 보인다. 완만한 슬랩 구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안전을 위해 중간 지점에 볼트가 하나 더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모양이 개척자의 의도였기 때문에 그 의미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먼 볼트간격을 둔 이유는 만만치 않은 거리를 등반하더라도 절대로 "쫄지 말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민 클라이머가 넷째 마디를 출발한다. 다소 찡그린 듯한 표정을 짓던 그는 한 동작이 끝나면 초크를 칠하고 루트 파인딩을 해가며 일보 일보 전진하고 있었다. 바위의 형태를 잘 살펴서 그에 적절한 동작을 구사하는 그는 그래서 등반이 더욱 안정적으로 보인다. 밴드까지 진출하여 두 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건 후 다시 왼쪽으로 10여 미터를 트래버스 하여 커다란 날개처럼 생긴 크랙을 꺾듯이 올라 탔다. 크랙을 잡고 레이백 상태로 날개를 접어가던 그는 마지막 구간에 이르러 캠을 하나 치고는 유유하게 등반을 마쳤다.

날은 벌써 어둑해져 오고 인수봉의 그림자가 이불보를 펼치듯 저 아래 영봉 주변에 까지 걸릴 무렵, 기온은 출발할 때와 달리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비스듬히 서있는 소나무의 왼편에서 출발하는 다섯째 마디 슬랩 구간은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거리는 약 40미터에 볼트는 불과 네 개에 불과하다. 10미터마다 볼트가 하나 있는 셈이다.

민은주 씨는 예의 차분한 동작으로 한 스텝 한 스텝 등반을 마치고 결국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겨 놓게 되었다. 슬랩구간인 마지막 여섯째 마디는 출발부터 슬랩이 높이 서있어 페이스를 연상할 정도였다. 볼트 거리도 만만치 않게 길어 보이고 크럭스 구간도 각이 세보여 최소한 5.10a는 되어 보인다. 이 구간이 마지막 복병인 셈이다.

하드 프리 등반이 자주 이루어지는 여정길. 그러나 여정길은 수치로 표기된 난이도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등반력과 담력을 필요로 하는 멋진 바윗길이다. 여정길은 지금까지 ‘태숙 씨와 말숙 씨’가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사실일까? 기자는 여정길의 개척자를 SNS와 전화를 통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기사를 쓰는 이 순간까지 그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여정길에 대해서 확실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 분들은 역시 1970~80년대 등반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산악인들이었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원로산악인 이용대(77세)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은 "동양길을 1968~1969년도에 개척했으니 여정길은 1970년도이거나 1970년대 초반에 개척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정길을 개척한 사람들은 여정산악회라고 여성들로만 구성된 산악회였지요. 당시 여정길을 개척하던 여성산악인들이 동양길을 올라 여정길의 루트 파인딩을 하고는 했지요. 이제 그 사람들을 찾기는 힘들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용대 교장의 말에 의하면 "당시는 캠이 없어 1피치를 인공등반으로 올랐다"고 한다. 등산화를 포함한 등산장비가 열악했기 때문에 비둘기길 조차도 인공등반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이 교장의 말에 따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정산악회라고 여성들로만 구성된 산악회가 있었으며 그들이 여성은 물론 자신들이 속한 산악회의 긍지를 높이고자 어렵게 여정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1985년에 건양길을 개척한 함기철(62세) 대장은 1980년대 초에 여정길을 직접 등반했다고 한다. 함 대장은 "1980년대 초 여정길을 어렵게 등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등반을 하다보면 볼트에 녹이 많이 슬어 있었습니다. 여성산악인 두 사람이 해외원정을 가기위해 훈련코스로 개척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함 대장은 또 "여정길은 1970~80년대 등반시 1피치 출발 직벽구간 볼트에 슬링줄을 걸고 발을 슬링줄에 넣고 밟고 오르거나 볼트따기로 오르다가 동양길 쪽으로 펜듈럼해서 오르기도 하고 직상을 하다가 추락을 하기도 했어요. 1피치는 크레타슈즈를 신고 인공등반으로 올랐으며 당시에는 캠도 없었지만 캠을 설치 할 만큼 깊은 크랙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수봉 남측에는 다른 인기 있는 길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인기가 있는 길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라고 옛날을 회상한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3) 인수봉 여정길 / 태숙·말숙 씨가 개척한 그길, ‘목각 은주’가 올랐다
그러다가 여정길이 관심을 크게 모으게 되는 계기가 생겼으니 그 일은 1987년 5월에 일어난다. 대한산악연맹 암벽등반대회 고교부와 여성 일반부 코스가 바로 여정길에서 열린 것이다. 이후 여정길은 하드프리코스로 알려지면서 오늘날처럼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쌀쌀한 날씨에 한기를 느낀 것일까. 민은주 클라이머가 주황색의 윈드자켓을 걸쳐 입고 부담스러운 여섯째 마디를 출발한다. 아마 앞으로 이 구간을 처음으로 온사이트 선등하는 클라이머라면 지금 민은주 클라이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침부터 긴장했던 탓에 집중력은 떨어졌고, 첫째 마디부터 거의 모든 확보점에서 대기했기에 지치기도 했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먼 볼트 간격.

그러나 올라야만 하는 것이 클라이머의 숙명이다. 둘째 마디부터 줄곧 빌레이를 봐준 아트클라이밍 이민재 클라이머의 긴장된 표정을 뒤로 하고 그가 출발 한다. 쫄지 않고 씩씩하게, 누가 뭐라 건 당당하게, 두 발을 믿고 힘차게 크럭스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간다.

아마도 그의 머리 속에는 약 43년 전 인수봉 남측에 여성산악인과 여정산악회의 명예를 걸고 이 길을 개척했던 태숙 언니, 말숙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크럭스 구간을 통과하여 볼트에 퀵드로를 거는 순간 ‘목각 은주’의 얼굴에서 작고 아름다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얼굴 위로 태숙 언니, 말숙 언니의 웃는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도 같았다.

한경닷컴 w스타뉴스 기사제보 kimgmp@wstarnews.co.kr

▶한국의 바위길을 가다(1) 인수봉 동양길 / 클라이머가 행복해지는 변주곡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33) 울산암 비너스길 / 나는 비너스를 보았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6)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그곳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김성률의 히말라야 다이어리 ①]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김성률의 에베레스트 다이어리 ①] 가자! 에베레스트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