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커피공화국
어느덧 가을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시기지만, 가을은 커피의 계절이기도 하다. 차나 커피는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인데, 유독 가을에 커피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쌀쌀한 날씨와 세로토닌 부족에 따른 생리적 반응 때문일까. 어쩌면 커피가 지닌 낭만적 풍미가 가을의 정서와 잘 어울려서일지도 모르겠다. 작가 이효석도 떨어진 낙엽을 태우면서 갓 볶아낸 커피를 떠올리지 않았는가.

물론, 도심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기는 쉽지 않다. 시끌시끌한 대형 커피전문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인파와 소음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최근 가구당 커피 관련 지출액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언론들은 내수경기가 좋지 않다는 증거로 분석했다. 하지만 한 집 걸러 새로 들어서는 커피전문점들을 보면 시장과 통계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된다. 지난 5년간 커피전문점 숫자는 7배가량 늘었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세다.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산업은 성장했지만, 규모에 어울리는 질적인 발전도 함께 있었는지 회의적이다.

어떤 분야든 사회를 뜨겁게 달구던 유행이 지나가고 소비자들이 경제적 효용 가치를 냉정하게 따지게 되면, 시장은 적정 규모로 안정되거나 급격히 도태되는 기로에 서게 된다. 그 많던 비디오방과 조개구이집들을 생각해보면 과거의 영화가 아득하다. 유행은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시장을 키운다. 바람이 부는 시기에는 거품에 가려 적정 시장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유행이 가고, 열기가 식은 다음에야 비이성적으로 과열된 시장이 확인된다.

우리나라 인구와 비교해볼 때 1만개가 훌쩍 넘는 커피전문점은 분명 공급 과잉이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앞다투어 카페 창업에 나서는 자영업자들이나 출점을 부추기는 대형 프랜차이즈들을 보면 지금이 유행의 정점인지는 잘 모르겠다. 문제는 거품이 사라진 이후다. 시장이 냉정해진 다음에 찾아올 커피전문 자영업자들의 위기와, 골목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커피가 가정이나 회사에서 주로 소비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위기의 가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커피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앞서 이런 걱정부터 드는 것은 혹시 직업에서 비롯된 조바심 때문은 아닐까. 모쪼록 기우이길 바란다.

이은정 한국맥널티 대표·여성벤처기업협회장 eunjlee@mcnult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