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 광혜원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요한 길목 중 한 곳이었다. 당시엔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했지만 지금은 자동차를 이용한다. 자동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품이 볼트다. 이곳에 있는 선일다이파스는 30년 동안 자동차용 볼트만을 만들었다. 작년 수출은 6500만달러에 달했다. 이 회사는 이제 국내 볼트 강자에서 한걸음 나아가 세계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김지훈 선일다이파스 사장(오른쪽)이 진천 공장에서 자동차용 볼트검사 작업자와 꼼꼼한 품질 점검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김지훈 선일다이파스 사장(오른쪽)이 진천 공장에서 자동차용 볼트검사 작업자와 꼼꼼한 품질 점검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1989년 9월 승객과 승무원 55명을 태운 여객기가 오슬로를 힘차게 이륙했다. 덴마크를 경유해 함부르크로 향하려던 이 비행기는 공해상에서 전투기가 옆을 스칠 듯이 가깝게 지나가자 급히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바다에 추락했다.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노르웨이 주도로 사고조사가 시작됐다. 잔해가 90%가량 회수됐다. 원인은 볼트 불량 때문으로 판명됐다. 비행기가 급선회하는 과정에서 볼트가 부러져 날개가 심한 진동을 일으켰고 그 결과 기체가 분해된 것이다. 부러진 볼트는 낡은 비행기에서 떼어낸 중고품이었다. 볼트 한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항공기 기계 전자제품 등에서 볼트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항공기나 우주선 사고에서 볼트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한 글로벌 자동차업체 경영자는 “자동차에서 볼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 면에서 4%에 불과하지만 완성차업체의 업무 중 91%가 볼트를 조이는 일이고, 사고의 94%는 볼트에서 생긴다”고 말할 정도다.

자동차는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볼트는 대당 수천개에 이른다. 볼트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볼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부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선일다이파스, 車 볼트생산 30년 외길…국내 강자에서 글로벌 업체 도약 채비
충남 진천 광혜원에 있는 선일다이파스(사장 김지훈·43)도 마찬가지다. 약 3만7000㎡에 이르는 공장에 들어서면 선재를 가늘게 뽑아 알맞게 자른 뒤 머리와 나사산을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군데군데 벌건 불꽃이 피어오르는 곳은 열처리 공정이다. 이곳에서 볼트는 단단하게 재탄생한다. 강도와 경도를 크게 높인 뒤 도금을 거친다. 녹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김지훈 사장은 “볼트는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소중한 존재”라며 “볼트가 없으면 자동차도 없다”고 말했다.

선일다이파스, 車 볼트생산 30년 외길…국내 강자에서 글로벌 업체 도약 채비
30년의 역사를 지닌 이 회사는 일본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첨단 기술을 가진 업체들과 제휴해 기술력을 높여왔다. 그러면 기술 개발이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김 사장은 “아직도 개발해야 하는 기술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강하고 단단하며 풀리지 않는 볼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지금도 연구개발에 힘을 쏟는 까닭이다.

김 사장은 “우리가 만드는 볼트는 주력 제품만 3500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크게 엔진이나 바퀴 섀시 등의 조립에 쓰이는 제품인데 크기별 모양별로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작년 매출은 1346억원인데 직·간접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다. 그는 “작년에 로컬수출을 포함한 전체 수출액은 6500만달러에 달했다”고 말했다.

선일다이파스, 車 볼트생산 30년 외길…국내 강자에서 글로벌 업체 도약 채비
김 사장은 선일다이파스 설립자인 김영조 회장(74)의 아들이다.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품질제조경영 석사와 경영학 석사(MBA)를 획득한 뒤 1999년 대리로 입사했다. 선일다이파스는 선경그룹의 선경기계에서 분사된 업체로 선경그룹에서 일하던 김 회장이 1983년 분사와 동시에 이를 인수하고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었다. 이때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김 사장은 성남 공장에 놀러가 구경을 하곤 했다.

대학원 졸업 후 정식으로 입사해 전산 생산관리 기획을 거친 뒤 2007년부터 대표를 맡아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세 가지를 중점 추진하면서 선일다이파스를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첫째, 글로벌화다. 이를 위해 스위스의 세계적 자동차볼트업체 SFS인텍의 자금 1000만달러를 유치해 중국 톈진공장을 합작법인으로 만들었다. 기술협력을 통해 거대한 중국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과 기술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스위스와의 합작으로 한단계 기술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품질관리다.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생산관리로 석사학위를 딴 배경을 바탕으로 품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 사장은 “우리 사훈이 ‘앞선 기술로 인류의 안전을 보장한다’일 정도로 기술과 품질관리를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늘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 종업원과의 단합이다. 김 사장은 “품질과 기술의 향상은 한사람 한사람의 손끝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종업원들과 함께 숨쉬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일감이 줄어 이 회사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달은 조업량이 평소보다 30%가량 격감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주4일 근무를 한 뒤 쉬거나 교육을 받도록 했을 뿐 단 한명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 옆 빈땅 3300㎡를 빌려 텃밭을 가꾸고 여기에서 기른 상추 수박 등을 구내식당 메뉴에 올리는 것도 단합을 위한 것이다.

이곳에선 때때로 바비큐 파티가 벌어진다. 그의 배려는 세심하다. 마라톤 배드민턴 등산 야구 축구 등 동호회 활동을 장려하고 운동회 때는 여성근로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운동 종목을 족구 대신 피구로 바꿨다.

선일다이파스, 車 볼트생산 30년 외길…국내 강자에서 글로벌 업체 도약 채비
김 사장은 “볼트 제조는 열처리 단조 도금 금형 등 뿌리산업적인 요소가 모두 필요한 대표 업종”이라며 “제조업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업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회에는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청소부도 필요하다”며 “쓸모없는 직업은 없는 만큼 회사 구성원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