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민이 서연에게서 등을 돌린 건 그녀가 술에 취해 선배와 함께 방으로 들어서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녀가 선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단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서연은 얼마 후 “왜 연락이 안 되냐”며 그를 찾아오지만 파국은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을 삼켜버린 뒤다. 승민은 “이제 제발 꺼져줄래?”라는 막말을 쏟아낸 뒤 혼자 눈물을 삼킨다. 하지만 서연이 좋아하는 사람은 선배가 아닌 승민이었다. ‘첫눈 오는 날 여기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려고 혼자 빈집으로 향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렇다면 승민은 왜 서연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쉽게 포기한 것일까. 여기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알고리즘(algorithm)’보다는 ‘휴리스틱(heuristic)’의 경로를 따라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수학과 컴퓨터 용어로 사용되는 알고리즘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론을 뜻한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다. 반면 행동경제학에서 파생된 휴리스틱은 이성이나 합리성보다는 직감 또는 직관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대개 명확한 근거나 실마리가 없을 때 나타난다. 휴리스틱의 단점은 ‘편향’이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승민이 알고리즘을 따라 행동했다면, 그리하여 ‘그날 밤’의 진실을 탐색했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분한 이성을 앞세우기엔 스무 살의 청년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광경이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