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직원 의견 적극 상품화
하지만 그는 요즘 달라졌다. 본인이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직원이나 고객의 제품 아이디어를 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회사가 매출 1000억원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퇴보하는 이유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의존’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직원·고객 아이디어 채용
한경희생활과학이 지난 7월 내놓은 ‘백솔루션’은 한 중학생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백솔루션은 책상에 앉았을 때 구부정한 자세로 앉는 것을 막아주는 제품이다. 기존 책상 위에 백솔루션 책상을 올려 놓으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고 각도 조절도 가능하다는 게 한 사장의 설명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은 고객이 제품 개발과정에 참여하고 수익도 얻는 ‘크라우드 소싱’으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아이디어 제공자에겐 매출의 5~10%를 준다.
이달 말 나오는 ‘히팅쿠커’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다. 갈치조림과 같은 음식은 오래 끓여야 하고 옆에서 불을 조절해야 하는데, 80% 정도 익힌 다음 히팅쿠커에 넣어 두면 천천히 간이 배어 주부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제품이다.
회사는 직원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매주 금요일 오후 모든 직원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 ‘싱크타임’을 갖고 있다. 1년에 두 번은 전 직원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팀’들의 경연대회도 연다. 히팅쿠커는 1등을 차지한 프로젝트 팀이 개발한 제품이다.
○‘제2의 스팀청소기’ 발굴 시급
한경희생활과학이 직원과 고객으로부터 아이디어 발굴에 나선 것은 회사가 최근 몇 년간 퇴보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해외법인 실적 제외)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9년 매출 975억원(영업이익 8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매출은 776억원(영업이익 30억원)으로 줄었다. 스팀청소기 시장에서 이 회사는 80%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스팀청소기를 갖고 있어 시장이 정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사장은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선 ‘제2의 스팀청소기 신화’를 발굴하는 것이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스팀청소기는 한 사장 본인이 느꼈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만든 제품이었다. 교육부 교육행정사무관이었던 그가 퇴근 뒤 집안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물걸레질이었다.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고민하던 차에 문득 ‘뜨거운 물이 나오는 대걸레를 쓰면 편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디어가 스팀청소기 개발로 이어졌고, 회사 설립 당시 직원 수가 10여명에 불과했으나 홈쇼핑 등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직원 120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힘써
한 사장은 “나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한경희가 없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고 이를 제품화할 수 있는 한경희생활과학을 만드는 것이 지금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미국과 중국 등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체 매출의 40%인 수출 비중을 더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한 사장은 “중국에선 유사품이 많이 나올 정도로 한경희생활과학 제품이 뛰어난 품질을 갖춘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우량 고객들을 집중 공략해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