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캔들
1975년 1월 중앙정보부가 인권변호사였던 이병린 대한변호사협회장을 간통 혐의로 누명을 씌운 사건이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이 변호사가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사임을 거부하자 잘 다니던 일식집 여종업원의 남편을 시켜 간통죄로 고소하게 한 후 이 변호사를 23일 동안 구금했다. 풀려나기는 했지만 망신당한 충격으로 이 변호사는 그후 인권변론은 물론 일반적인 변호사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언론사가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크게 보도한 것을 빼면 이 변협회장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 지나친 걸까.

채 총장은 이른바 ‘악마의 증명’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모습이다. 어느 초등학생에게 ‘네가 훔치지 않은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네가 훔친 것’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원래 권력층의 뇌물사건이나 스캔들과 같은 비리에 대한 수사나 취재는 뇌물을 직접 준 사람이나 스캔들의 상대방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채 총장의 아이라고 지목된 학생의 어머니 임모 여인에게서 직접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그는 사실관계도 부인하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기사를 쓰기 쉽지 않은 소위 ‘혼외아들 설’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수사로 치면 내사 이전의 정보수집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한 연예인 자살 사건과 관련해 대정부 질문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의 질문에 대해 한 언론인은 “어느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위치에 있는 인사가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것을 기화로 전혀 근거 없는 모략과 모함을 당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근거 없는 리스트로 인해 입증되지 않은 어느 주장만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언론 종사자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라고 했었다. 지금 상황에 대한 그 언론인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종걸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