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왼쪽)이 24일 국방부에서 차기 전투기 후보 기종인 F-15SE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왼쪽)이 24일 국방부에서 차기 전투기 후보 기종인 F-15SE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8조3000억원 규모의 차기전투기(FX) 사업이 결국 원점 재검토로 돌아섬에 따라 전력화가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공군 전력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사업 재추진을 1년 남짓한 범위에서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다”며 “당초 예정된 2017년부터 전력화하는 데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데 2년여 걸렸고 예산을 서둘러 짜도 2015년이 돼야 반영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차기 전투기 사업 지연은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반쪽 스텔스' 논란에 결국 무산…전력 증강 1~2년 차질 불가피

○보잉 “깊은 실망과 유감”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단독 상정된 미국 보잉의 F-15SE를 부결시킨 가장 큰 이유는 스텔스 기능이다. F-15SE는 스텔스 기능이 5세대 전투기로 평가받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보다 떨어져 4.5세대 전투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예비역 장성들은 F-15SE 선정에 거세게 반대했다. 이날 회의에서 대부분의 위원이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은 스텔스 전투기 개발 및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은 F-35A 구매를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스텔스기를 잡는 레이더를 개발하고 있는 등 스텔스 기능이 절대적인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보잉 측은 방추위의 결정에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며 “모든 절차를 준수했는데도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방추위에 앞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사업 재검토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지난 6월 FX사업 1차 입찰을 끝낸 뒤 방위사업청과의 협의 과정에서 F-35A 스텔스기를 40대 구매할 수 있는 ‘20-40대 분할 구매안’을 검토했다가 당시 공군이 전력 공백을 강하게 우려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F-15SE는 임무 수행 능력, 즉 성능 면에서 F-35A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 확보가 가장 큰 문제

차기 전투기 전력화 시기는 지난해 기종 선정 연기로 이미 2016~2020년에서 2017~2021년으로 조정된 상태다. 방추위의 이번 기종 선정 안건 부결로 차기 전투기 전력화 시기는 2019~2022년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루 빨리 전력 공백을 메워야 하는 공군은 “방위사업추진위 결정을 수용한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지만 이번 결정에 대해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공군은 구매 대수 축소나 분할 매수 등으로 사업 방식을 변경하면 차기 전투기 전력화가 2년 이상 늦어져 전력 공백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주장해 왔다. 공군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460여대 전투기 가운데 50% 이상은 도입된 지 30~40년이 지난 노후 기종이다. 2019년까지 쓸 수 있는 전투기는 340여대로, 이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판단한 우리나라의 적정 전투기 규모(430대)보다 100대 부족한 것이다. 공군 관계자는 “실제 전쟁 상황에서는 발발 후 3일 동안 얼마나 집중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분할 구매 등으로 전투기 전체 대수가 줄면 아무리 스텔스 기능이 있어도 전력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예산 확보도 미지수다. 현재 가격 기준으로 F-35A 60대를 사려면 지금보다 최소 1조5000억원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복지 재정이 시급한 정부로서는 예산을 더 늘리는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방사청 비판 피하기 힘들 듯

방사청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책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추진한 무기 도입 사업에서 후보업체가 제시한 가격이 총사업비를 초과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이번 FX사업의 총사업비는 9조7000억원이었다. 이후 후보 업체의 예상 사업비를 고려해 8조3000억원으로 조정했다. F-35A 개발비용이 상승하면서 총사업비가 초과하는 초유의 사태에 적절히 대응을 못하면서 기종 평가에서 1등을 하지 못한 F-15SE가 단독 후보로 상정된 것이다. 방사청이 처음부터 사업 설계에 치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