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엄마 총리' 메르켈
“여자가 총리가 되는 건 막아야 합니다.” 2005년 9월 독일 총선 직전, 앙겔라 메르켈 당시 기민당 대표를 ‘음해’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현직 총리 슈뢰더는 말할 것도 없었고 기민당 출신 주지사와 장관들까지 난리였다. 여왕이 있는 영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여성 통치의 전례가 없었으니 그럴 만했다. 게다가 선거 한 달 전 여론조사에서 메르켈은 29%로 슈뢰더(43%)에게 한참 뒤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메르켈은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 출신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됐다. 시골목사의 딸로 태어난 동독 출신의 여성 물리학자이자 남성 가톨릭 신자들이 이끌던 기민당의 첫 개신교 신자로서 독일 정치의 신지평을 연 것이다. 35세 때 정치에 입문한 지 15년 만이었고, 엊그제 3연임 성공까지 이어지는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2017년까지 12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면 영국의 대처(11년)를 넘어 최장수 유럽 총리 기록도 세우게 된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정치 전문가들은 깨끗한 이미지를 먼저 꼽는다. 그는 젊은 시절 공산당원으로도 활동했지만 동독이 망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사상적으로 전향했다. 이후 통일을 바라는 민주 개혁 운동에 앞장섰고, 통독 후 연방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때마침 동독 출신의 새 인물을 찾던 헬무트 콜 총리의 눈에 들어 연방여성청소년부 장관, 연방환경부 장관에 기용됐다. 그의 진가는 1999년 콜의 비자금 문제로 기민당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 발휘됐다. 차기 총리 후보들에 의해 임시대표로 뽑힌 그가 ‘곧 축출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대표 자리를 굳힌 건 비자금 스캔들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과학자답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정치스타일도 성공 요소다. 그는 말수가 적고 실수를 잘 하지 않는다. 중대한 일을 판단할 때도 충분한 자문을 거쳐 결정하니 헛발질도 적다. 학교 수영 시간에 다이빙 보드에서 꼼짝도 못 했다는 그는 “위험이 따를 때마다 늘 신중히 행동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를 앞세우지 않는 실용주의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합과 포용력을 갖춘 ‘엄마 리더십’이다. 그는 상대의 말을 따뜻하게 들어주면서 모성적인 소통으로 설득하는 데 탁월하다. 유로존 위기 때 모든 상황을 듣고 조율하며 최대공약수를 만들어 낸 것도 이 덕분이라고 한다. 해외출장을 앞두고도 남편 아침식사를 꼭 챙겼고, 주말 별장에서 키운 채소로 친구들을 대접하며 농담까지 즐기는 소탈한 면모도 인기 비결이다. 자식이 없지만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그렇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