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을 잃은 부동자금이 공모주로 몰리고 있다. 저금리 탓에 은행 예금 및 채권 투자 매력이 크게 떨어진 데다 증시 침체 여파로 기존 상장주식 투자로 재미를 보기 힘들어지자, 올 들어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 공모주로 투자자들이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공모주 나오기만 하면 1조 뭉칫돈

○공모주에 몰리는 부동자금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기업공개(IPO)를 위해 일반공모를 마친 19개 기업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262 대 1로 집계됐다. 일반공모 물량 기준으로 682억여원 모집하는데 17조8800억원이 몰렸다.

지난 24일 일반공모를 실시한 비상발전기 제조업체 지엔씨에너지는 일반물량 24만2000주(14억원 규모)를 모집하는 데 9083억원이 몰려들었다. 청약경쟁률은 1251 대 1. 최대 청약한도인 7200만원을 청약증거금으로 내놓아도 고작 11주(주당 6000원)를 받는다는 얘기다. 지난 5일 일반공모를 실시한 특수효소 개발업체인 아미코젠의 경우 30억원을 모집하는 데 1조111억원이 몰렸다.

IB업계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와 증시 침체가 맞물리면서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공모주로 쏟아지고 있다”며 “투자자 상당수가 ‘은행 예금에 넣거나 기존 상장주식을 사느니 공모주에 투자하겠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 예금 잔액은 작년 말 556조원에서 지난 7월 말 547조원으로 9조원가량 줄어들었다.

기관투자가들도 공모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모가를 결정짓는 기관의 청약 열기가 거세다 보니 당초 기업들이 희망한 공모가를 웃돈 가격에 형성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아미코젠은 회사 측의 희망공모가(2만800~2만3800원)보다 높은 2만5000원으로 확정됐고, 디스플레이 부품소재업체인 지디와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자동화 장비업체 세호로보트의 공모가도 희망 공모가보다 15~20% 높게 결정됐다. 26일 일반공모 청약에 들어가는 엘티씨의 공모가도 희망공모가(주당 1만7500~1만9500원)를 웃도는 주당 2만500원으로 확정됐다.

○귀한 공모주…평균 주가 35% 올라

‘공모주 열풍’의 배경에는 높은 수익률이 있다. 올 들어 증시에 데뷔한 18개 기업의 현재 주가(25일 종가 기준)가 공모가 대비 평균 35%나 올랐기 때문이다. 아미코젠 주가는 공모가 대비 2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1.6%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공모주 투자 매력은 더욱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 뒤 주가가 공모가를 웃돈다는 건 그만큼 기업가치에 비해 공모가를 낮게 책정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거래소와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들이 신규 상장기업에 대해 공모가를 최대한 낮추도록 유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모가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려는 기업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다. 증권사들도 공모가가 높게 책정될 경우 ‘흥행’에 실패해 상장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보수적으로 책정토록 기업에 권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 7월1일부터 “상장 주관사는 공모물량의 3%를 의무 인수한다”는 제도가 시행된 것도 ‘낮은 공모가’ 트렌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규 상장기업 수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공모주 열풍’을 일으킨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2010년 96개에 달했던 IPO 건수가 올 들어 9월 말까지 18건으로 쪼그라들자, 공모주가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투자자가 몰리는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IPO업계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와 증시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공모주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지/오상헌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