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힘든 한국] 67년 간장 만들던 샘표식품, '中企업종' 묶여 사업확장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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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더 울리는 경제민주화법 (3) 중견기업이 더 아프다
주력사업 못키우고 육포 등 타분야 눈돌려
일감몰아주기·하도급 규제도…대기업보다 중견기업 더 타격
주력사업 못키우고 육포 등 타분야 눈돌려
일감몰아주기·하도급 규제도…대기업보다 중견기업 더 타격
![[기업하기 힘든 한국] 67년 간장 만들던 샘표식품, '中企업종' 묶여 사업확장 못해](https://img.hankyung.com/photo/201309/AA.7877952.1.jpg)
○전문화 기업도 ‘확장금지’
정부가 추진해온 ‘동반성장’ 정책의 취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함께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동반성장 정책의 타깃으로 삼은 ‘대기업군’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대기업뿐만 아니라 갓 중소기업 테두리를 벗어난 중견기업들도 다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제조 분야 중소기업 범위는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다. 매출은 1500억원을 넘지 말아야 한다.
이 범위를 벗어난 기업(중견기업)은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상생법) 적용 대상이 된다. 두부 간장 블랙박스 같은 제조업 품목 85개, 서비스업 품목 15개 등 총 100개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이 분야에서만 기업을 키워온 곳도 매출이 1500억원을 넘어서거나 종업원(상시근로자)을 300명 이상 채용하면 ‘더 이상 커서는 안 된다’는 규제를 받게 된다.
간장시장 점유율 약 50%인 샘표식품이 대표적 사례다. 2011년 1420억원이었던 장류 매출은 지난해 1452억원으로 거의 늘지 않았다. 시장 규모가 확 커지지 않는 한 매출을 더 늘릴 수가 없다. 샘표식품이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과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해외에서 살 길을 찾고 있다. ‘파리바게뜨’가 올해 해외에 낸 점포는 중국 19곳을 포함, 4개국 31곳에 이른다. 올해 2월 제과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국내 신규 출점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해외 점포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과세 피해 집중
국세청은 지난 7월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납부 신고안내문을 발송했다. 과세 대상이 된 6200개 기업 1만여명 가운데 30대 그룹과 관련 있는 기업인은 7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중견·중소기업 대주주들이었다.
중소·중견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집중 타깃이 된 것은 대기업에 비해 대주주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계열사 간 거래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지는 반면 중소·중견기업들은 기업공개조차 아직 못한 곳이 많다. 대주주 지분율이 100%인 기업도 상당수다. 대주주 지분율 요건(30%)을 빠져나가기 어렵다.
부품 조달이나 판매망 확충 등 ‘수직계열화’ 차원에서 계열사 또는 관계사를 두는 곳이 중소·중견기업들에 상대적으로 많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도 대기업보다 높은 편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세무 당국이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만 따져 증여세를 매기다 보니 중소·중견기업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봤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이달 초 열린 중견기업 정책토론회에서 “중견기업이 부담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감몰아주기 과세액은 약 400억원”이라며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하느니 차라리 법인세를 더 물리는 게 낫다”는 말까지 했다.
○하도급법도 문제
하도급거래 공정화법(하도급법) 역시 대기업을 겨냥한 입법이지만 그 피해는 중견기업에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대기업과 거래하는 1차 협력사가 상당수인데, 이들이 2·3차 하도급업체와 거래를 할 때에도 이 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2·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범용 제품이 많고 경쟁 포인트가 ‘가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납품 단가를 함부로 인하했다가는 소송을 당할 수 있다.
하도급법이 너무 까다로워 대기업들이 거래처를 아예 해외로 돌릴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위험 때문에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하도급법 수혜 대상인 ‘수급사업자’에서 빼 달라고 한다. 하도급법 혜택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하도급법 적용을 받는 기업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왔다. 지금은 중소기업만 거래대금 결제 등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는 매출 6000억원 미만인 중견기업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3개 중견기업이 이 혜택을 새로 받지만, 부품 등을 납품받는 중견기업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더 좁아졌다.
기획취재팀 이태명·정인설·전예진·김대훈 기자(산업부), 안재광 기자(중소기업부), 이현진 기자(건설부동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