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시간제근로자 사령식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주부 행원들이 V자를 그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기업은행이 시간제근로자 사령식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주부 행원들이 V자를 그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우리끼리는 ‘동남아’라고 부릅니다. ‘일자리가 없어 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라는 뜻이지요. 기업은행이 시간제 근로자를 모집한다고 해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서울 을지로의 기업은행 본점에선 지난 25일 아줌마 109명의 특별한 사령식이 열렸다. 파트타임 근로자처럼 하루 4시간만 일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금융권 최초의 ‘시간제 근로자’다. 이들은 명예퇴직 육아 등의 사정으로 경력이 단절되긴 했지만 10년 안팎 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줌마에서 은행원으로 당당하게 복귀한 합격자들은 2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실력파다. 이들은 사람이 필요한 영업점이나 전화센터 등에 집중 배치된다.

◆금융시장 격변기 거쳐온 아줌마들의 컴백

뜻깊은 재취업에 성공한 109명은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단순 업무인 영업점 텔러 출신부터 외환 프라이빗뱅킹(PB) 인사 고객상담 등의 전문 분야를 섭렵한 인재까지 고루 뽑혔다. 이전 근무기간도 평균 10년을 웃도는 베테랑들이다.

공통점도 있다. 일을 그만둔 이유와 시기가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합격자 중 40%는 서울 조흥 등 2000년대 초반 사라진 시중은행 출신이다. 당시는 인수합병(M&A)으로 인한 노사 갈등, 합병 은행 내 출신에 따른 대립 등으로 금융권이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격변의 시기를 감내하다 자발적으로 그만둔 사람도 많다. 2005년 국민은행을 나온 한경숙 씨는 “당시 리츠펀드(부동산 펀드) 중엔 수익률이 -70%로 떨어지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분위기가 안 좋아 명예퇴직을 기다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육아도 직장을 떠나게 된 주요 이유다. 외환은행에서 10년간 일하다 2004년 사표를 낸 최진 씨는 “당시 론스타 등의 이슈로 조직원의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 상황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어려웠다”고 떠올렸다.

◆전문성 쌓으며 복귀 노력

여러 사정으로 일을 접어야 했지만 이날 합격자들은 대부분 전문성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 점을 복귀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독고윤미 씨는 “HSBC은행에서 했던 PB 경험을 살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금융 교육을 해왔다”며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각종 교육연수를 따로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은행 영업점의 임시직을 전전하며 복귀를 준비해온 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여유시간이 생기자 경력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 한 합격자는 “창구 텔러 임시직을 하게 되면 빈자리가 나는 영업점을 돌아다녀야 한다”며 “마흔이 넘어 ‘보따리장수’를 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재취업의 기회가 생겼을 때 내세울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견뎠다”고 설명했다.

재취업의 문을 통과했지만 이들에겐 만만찮은 난관이 남아 있다. 특히 예전과 달리 금융소비자 보호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금융상품의 약관을 더욱 쉽게 설명해야 하는 일은 적잖은 부담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조흥은행을 나온 김현숙 씨는 “이전엔 계좌주의 실명 여부만 가리면 됐는데 요즘엔 불법 거래인지도 살펴야 한다”며 “그래도 ‘동남아’로 남아 있기보다 힘들어도 내 일을 다시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