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누구를 위한 기초연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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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누구를 위한 기초연구인가](https://img.hankyung.com/photo/201309/02.6938183.1.jpg)
이명박 정부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국가 과학프로젝트’라는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추진될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기초연구를 억지로 비즈니스와 엮는 것도 석연치 않았고, 이런 거대사업이 추진될 경우 기존사업들이 무사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이들은 특별법에 따른 사업이고 추가적 예산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착한 국민들은 우리도 노벨과학상 한 번 받자는 말에 바로 넘어갔음은 물론이다.
연구비 갈등 예견된 일
하지만 사업을 주도하던 이들이 노회한 예산당국을 미처 몰라봤던 모양이다. 시작이야 어찌됐건 결국 예산당국이 기초연구란 이름의 사업들을 다 한 바구니로 넣고 따질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와서 의도했던 게 아니라지만 궁극적으로 기초연구비 배분 갈등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과학계 내부 갈등은 갈수록 첨예화될 공산이 크다.
물론 과학비즈니스벨트 덕분에 전체 기초연구비가 늘어난 건 맞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출범했고 기초분야 대형 연구단들도 탄생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성과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IBS라는 산하기관이 하나 생겼고, 명망 있다는 과학자들은 큰 밥그릇을 챙겼다. 여기에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유치한 지역은 툭하면 중앙정부에 돈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정부의 기초연구 철학이 뭔지 모르겠다. ‘한판 승부’도 아니고 연구단에 해마다 최대 100억원씩 던져주면 노벨상이 뚝딱 나오기라도 하나. 아무리 ‘과학기술계 4대강 사업’이라지만 한 연구단에 그 많은 돈이 왜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관료들의 조급한, 위험회피적 성과주의와 맞아떨어진 거라면 불행한 일이다. 순수성만 믿고 연구단을 맡은 일부 과학자들이 다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국연구재단도 그 이름이 부끄럽다. 연구재단 수장의 목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나라다. 말이 연구재단이지 연구비나 관리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정권만 바뀌면 관료들은 신규 사업 만들기 바쁘고, 그때마다 힘 없는 과학자들은 갈아타기, 헤쳐모여를 반복해야 한다.
철학 부재가 더 큰 문제
기초연구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연구경력이 일천하고, 권력도 네트워크도 없는 창의적 연구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한 우물만 파고 싶다는 연구자도 이 땅에서는 도태당하기 딱 좋다. 이런 연구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기초연구라면 그게 개인연구든 대형연구든 더 이상 기초연구라고 할 수도 없다.
차라리 삼성이 기초과학에 10년간 5000억원을 출연한다는 미래재단에 한 표 던지겠다. 정부만 기초연구를 지원하라는 법도 없다. 실제로 선진국에선 민간 연구재단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삼성재단에 설립 허가를 내준 미래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걸작이다. “삼성재단이 정부와 차별화된 전략으로 가도록… 한국연구재단 등과 협의체를 구성… 중복지원 문제를 사전에 검토하는 등 협조를 강화하겠다.” 아이고 이제는 민간 연구재단까지 간섭하시려고? 정부는 제발 정부 일이나 똑바로 하시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