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누구를 위한 기초연구인가
정권마다 한국도 이젠 선진국을 모방하기보다 창의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그래서 내놓는 공약이 바로 정부연구개발비에서 기초연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들고나온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연구현장에서는 그 기초연구비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르겠다며 난리다. 특히 대학 연구자들의 불만이 거의 ‘민란 수준’이란 얘기도 들린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이명박 정부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국가 과학프로젝트’라는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추진될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기초연구를 억지로 비즈니스와 엮는 것도 석연치 않았고, 이런 거대사업이 추진될 경우 기존사업들이 무사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이들은 특별법에 따른 사업이고 추가적 예산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착한 국민들은 우리도 노벨과학상 한 번 받자는 말에 바로 넘어갔음은 물론이다.

연구비 갈등 예견된 일

하지만 사업을 주도하던 이들이 노회한 예산당국을 미처 몰라봤던 모양이다. 시작이야 어찌됐건 결국 예산당국이 기초연구란 이름의 사업들을 다 한 바구니로 넣고 따질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와서 의도했던 게 아니라지만 궁극적으로 기초연구비 배분 갈등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과학계 내부 갈등은 갈수록 첨예화될 공산이 크다.

물론 과학비즈니스벨트 덕분에 전체 기초연구비가 늘어난 건 맞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출범했고 기초분야 대형 연구단들도 탄생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성과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IBS라는 산하기관이 하나 생겼고, 명망 있다는 과학자들은 큰 밥그릇을 챙겼다. 여기에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유치한 지역은 툭하면 중앙정부에 돈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정부의 기초연구 철학이 뭔지 모르겠다. ‘한판 승부’도 아니고 연구단에 해마다 최대 100억원씩 던져주면 노벨상이 뚝딱 나오기라도 하나. 아무리 ‘과학기술계 4대강 사업’이라지만 한 연구단에 그 많은 돈이 왜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관료들의 조급한, 위험회피적 성과주의와 맞아떨어진 거라면 불행한 일이다. 순수성만 믿고 연구단을 맡은 일부 과학자들이 다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국연구재단도 그 이름이 부끄럽다. 연구재단 수장의 목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나라다. 말이 연구재단이지 연구비나 관리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정권만 바뀌면 관료들은 신규 사업 만들기 바쁘고, 그때마다 힘 없는 과학자들은 갈아타기, 헤쳐모여를 반복해야 한다.

철학 부재가 더 큰 문제

기초연구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연구경력이 일천하고, 권력도 네트워크도 없는 창의적 연구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한 우물만 파고 싶다는 연구자도 이 땅에서는 도태당하기 딱 좋다. 이런 연구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기초연구라면 그게 개인연구든 대형연구든 더 이상 기초연구라고 할 수도 없다.

차라리 삼성이 기초과학에 10년간 5000억원을 출연한다는 미래재단에 한 표 던지겠다. 정부만 기초연구를 지원하라는 법도 없다. 실제로 선진국에선 민간 연구재단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삼성재단에 설립 허가를 내준 미래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걸작이다. “삼성재단이 정부와 차별화된 전략으로 가도록… 한국연구재단 등과 협의체를 구성… 중복지원 문제를 사전에 검토하는 등 협조를 강화하겠다.” 아이고 이제는 민간 연구재단까지 간섭하시려고? 정부는 제발 정부 일이나 똑바로 하시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