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간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원의 전경.
센간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원의 전경.
‘가고 싶은 가고시마(want to be there once again)’라는 홍보 문구를 보았을 때만 해도 단순한 언어유희 정도로 생각했다. 위대한 자연과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정서가 깃든 가고시마의 구석구석을 만난 후에야 그 말이 내게 순도 100%의 진심으로 다가왔다. 마음 한 쪽에는 가고시마가 전해준 작은 떨림과 감동이 남았다.

○에도시대 정원 센간엔의 풍경


아침 공기의 성질은 어느 곳이나 똑같다. 차고 톡 쏘는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가 알싸해지는 순간 잠에 취해 몽롱한 정신은 깨어난다. 다행히 오늘 아침엔 사쿠라지마 화산섬에서 폭발한 화산재가 가고시마시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바람을 타고 번진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켜며 한 발 두 발 움직여 다다른 곳은 센간엔이다. 센간엔은 에도시대인 1658년 가고시마의 터줏대감 시마즈 가문의 별장으로 지어진 곳이다. 일본식 조경 양식을 기반으로 중국,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의 조경 양식을 혼합해 재현한 5만㎡ 규모의 거대한 정원이다. 사쿠라지마 화산섬과 가고시마만이 그림처럼 펼쳐진 전경과 3개의 문화가 뒤섞인 조경 양식 때문에 일본 정원 특유의 느낌보다는 이국적이다.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허기가 지기 마련. 이때 적극 추천하는 간식은 바로 가고시마의 명물 잔보모찌다. 잔보모찌는 갓 쪄낸 작은 쌀떡에 대나무 꼬치 2개를 꽂아 구운 후 간장 맛의 달콤한 소스를 뿌린 간식이다. 사무라이의 큰 칼과 작은 칼을 본뜬 것이라 하여 잔보(兩棒)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책 코스에 무료함을 느낀다면 가고시마를 대표하는 전통 수공예품을 접할 수 있는 작은 갤러리에 들어가 보자. 견고하고 세밀하게 가공된 유리잔인 사쓰마 기리코와 백제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 사쓰마 야키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사쿠라지마 화산섬 비경이 한눈에


가고시마 최대의 볼거리는 단연 사쿠라지마 화산섬의 활화산 미나미다케(南岳)다. 가고시마항에서 뱃길로 15분이면 도착하는 사쿠라지마섬. 100년 전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고도인 해발 8000m까지 폭발해 그 화산재가 러시아까지 날아갔다는 기록적인 대폭발 이후 지금까지 크고 작은 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가고시마 시내 전경을 감상하던 잠시의 순간에도 작은 폭발을 여러 번 목격했다. 가고시마 기상청 기록에 의하면 2010년에는 100번이 넘는 폭발이 일어났다고 하니 1200년 전부터 시작된,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방년 8세에 접어든 이 화산의 운동량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화산활동으로 인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구로카미 매물도라이로 발길을 옮겨보자. 도라이는 신사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대문인데, 100년 전 화산 대폭발에 의한 화산재로 2m가량 매몰되었다. 남겨진 도라이의 기둥을 이어주는 횡목 부분이 당시 분화의 대폭발 모습을 가늠케 한다.

도라이를 지나 조금만 들어가면 구로카미 신사가 있다. 화산재가 나무로 지어진 신사를 덮어 보존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매캐한 먼지를 일으키며 돌가루가 떨어진다. 조금 전 폭발에 의한 화산재가 날리는 순간이다. 깜작 놀라 당황한 나의 반응에 현지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것이 일상이고 이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5600명 정도의 섬 주민들은 화산, 폭발, 용암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도 초연히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노란색 안전모를 쓰고 학교에 다니고, 땅의 지질에 맞게 농사를 짓는다. 이곳저곳에 방공호를 만들어 화산재가 날리면 대피한다. 빨래는 절대 야외에 널 수 없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대폭발에 대비해 바다로 피신할 수 있는 배도 준비해야 한다. 섬 생활은 불편한 일상을 감수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고향을 지키며 살아간다. 불편하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대폭발이 있기 몇 개월 전에는 반드시 지진이 먼저 오며 이것으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웃음을 잃지 않으며 화산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삶’이라는 단어가 전하는 치열하지만 따스한 느낌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최대 번화가 덴몬칸 전통음식점 즐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외온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외온천.
화산이 인간에게 전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따뜻한 온천이 아닐까. 사쿠라지마섬에는 직접 온천을 팔 수 있는 체험 코스가 있다.

조그마한 모종삽 한 자루면 충분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해안의 검은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두어 번 파고 나니 철분 가득한 주황색 물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다를 바라보며 족욕을 즐길 수 있는 크기의 나만의 온천이 생겼다. 천국이다.

발만 담그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노천온천이 있는 후루사토관광호텔로 가면 된다. 가고시마만과 사쿠라지마섬 사이의 바다를 한눈에 담으며 여기저기 뭉쳐 있는 불쌍한 근육들을 따뜻한 온천물에 담근다. 앞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쪽에서는 미나미다케 봉우리의 열기가 솟구친다.

가고시마 최대의 번화가인 덴몬칸에서 저녁시간을 즐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에도시대에 ‘메이지칸’이라는 학문의 전당으로 구획한 거리 중 천문을 관측하던 ‘덴몬칸’이 지금의 거리 이름이 되었다. 아케이드로 연결된 넓고 큰 규모로 일본을 대표하는 100엔숍을 비롯해 옷가게, 액세서리 가게, 가고시마 전통음식점이 즐비하다.

가고시마 최고의 음식인 흑돼지 샤부샤부도 맛볼 수 있는데 텐몬칸 내에 위치한 ‘이치 니 산’이라는 음식점이 유명하다. 돼지 냄새가 전혀 없고 입에서 살살 녹는 흑돼지 샤부샤부 외에도 흑돼지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나온다.

◆ 여행팁

아침을 품은 정원·야외온천…삶의 쉼표가 있는 곳
대한한공, 일본항공, 델타항공, 중국동방항공이 가고시마공항에 취항한다. 공항에서 가고시마 중심의 중앙역까지 버스로 약 1시간 걸린다.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가고시마는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중앙역을 기점으로 시내의 관광명소를 순환하는 시티 뷰버스를 이용하면 사이고동굴, 난슈고원, 센간엔, 가고시마 수족관, 덴몬칸 등을 돌아 볼 수 있다. 시내 중심부를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싶다면 노면전차를 추천한다. 싼 요금으로 중심부에 있는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기에 무리없다.

일본 어느 지역이나 그렇듯 가고시마에도 이름난 먹거리가 많다. 그 중 사쓰마아케는 꼭 먹어볼 것을 권한다. 가고시마현의 옛 이름 ‘사쓰마’와 튀김이라는 의미의 ‘아게’가 결합된 가고시마의 명물 어묵이다.

이외에도 흙돼지 샤부샤부, 소바, 고구마소주 등이 별미다. 남규슈 최대의 번화가로 알려진 덴몬칸에서 대부분 맛 볼 수 있다.

가고시마=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