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촌·화우는 안도, 태평양·지평지성은 당혹.’

지난주 판결이 선고된 최태원 SK·김승연 한화 회장 재판에서 변호인단 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율촌·화우가 변론을 맡은 김 회장은 지난 26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배임액 계산 잘못에 따른 파기환송’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파기환송심인 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 것. 반면 태평양·지평지성이 8개월 동안 방패막이 역할을 한 최 회장은 27일 항소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4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최태원·재원(징역 3년6월) 그룹 총수 형제에 대한 선고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이를 놓고 우선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1심에서 김앤장의 조력을 받은 최 회장은 SK 계열사에 펀드 출자를 지시한 사실도 부인하는 ‘무리수’를 뒀다가 쓴잔을 마셨다. 2심부터 변호인단이 교체되면서 전략도 바뀌었지만 1심의 허위자백이 항소심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지평지성 등 항소심 변호인단에 “무슨 얘길 해도 재판부가 믿어주질 않는다”며 “답답하다”고 자주 하소연했다고 한다. 한 변호사는 “양형이 막판에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최 회장의 경우 4년보다 형이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고민 중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뚜껑을 연 결과는 크게 달랐다.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국내 송환 ‘타이밍’이 독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비쳐질 수 있었다는 것.

이에 비해 한화 측은 율촌·화우의 선전에 만족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 관계자는 “지급보증분이 중복 계산됐다거나 부동산감정평가가 잘못돼 배임액수가 과다 계산됐다는 이슈를 변호인단이 잘 발굴해냈다”고 말했다.

SK 항소심 재판에서는 문용선 재판장의 재판진행 방식에 변호인들이 적지 않게 가슴앓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증인심문 과정 등에 검찰과 변호인단 이상으로 간여하고, 특정 피고인에 대한 유죄심증을 내비치며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 다른 재판부에서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공현 지평지성 대표변호사의 추가선임은 재판장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변호인단의 모습을 보다 못한 최 회장이 ‘긴급수혈’을 지시한 결과로 알려졌다. 김 전 고문에 대한 SK 측의 변론재개 신청을 재판부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대목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평가될지도 주목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