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고령사회 대비 '퇴직절벽' 완충장치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마침내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앞으로 3년 후면 한국 사회는 명실공히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26년이면 다섯 사람 중 한 사람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이르게 된다.

인구 구조의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노동시장의 고령화로 연결될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추계에 따르면 50~64세 중고령 근로자 비율이 2020년이면 31.8%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또 2050년에 이르면 65세 이상 근로자 비율은 17.8%, 50~64세 근로자 비율은 32.8%로 25~49세 근로자 비율 44.0%를 크게 앞지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근로자의 고령화 추세가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의 은퇴 모델을 재고해야 한다는 인식 또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은퇴한 남편 존경하기’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란 인터넷 유머가 떠돌아 다닌 지도 오래전 일이요, ‘은퇴한 남편 집에 두고 오자니 근심덩이, 함께 데리고 다니자니 짐덩이, 며느리에게 맡기자니 눈치덩이’란 유머도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게다.

확실히 기존의 은퇴 혹은 퇴직 개념은 칼로 무를 자르듯 단칼에 구분되는 ‘기요틴(단두대) 모델’이요, 은퇴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나뉘는 ‘도 아니면 모 모델’이자, 퇴직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을 손에서 놓고 마는 ‘절벽 모델’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루아침에 은퇴자가 된 개인은 누구나 생애주기상 과도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고, 노동시장은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란 악재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퇴직 모델의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 중이란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곧 퇴직을 규정함에 한순간 일로부터 단절되는 사건으로 간주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서서히 노동시장을 빠져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설정함으로써, 생산 활동 중지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정서적 고립감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실제로 중장년 및 고령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 노년학’ 분야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일에 부여하는 의미나 가치 또한 변화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엔 왕성한 생산성을 기반으로 두둑한 보수를 받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중년 이후엔 일 자체를 즐기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시장 고령화에 가속이 붙은 현재,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 근로자 간의 유기적 역할분담이 중요한 상황에서 특별히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음은 우리의 시선을 끈다.

일례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7개 회원국 정부를 향해 △고령 노동자의 근로 의욕을 높이고 숙련도를 제고하는 동시에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정비할 것 △고령 노동자 대상의 평생 교육 시스템을 널리 홍보하고 확산할 것 △근로기간을 연장하고 근로능력 쇠퇴를 완화시킬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개선할 것 △고령자 적합 직종을 개발하고 유연시간 근무 형태 접근성을 제고할 것 △노동시장 내 연령차별적 태도와 관행을 불식시킬 것 등을 권고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고령 노동자를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과 중장년 노동자의 근로능력 제고에 주력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보조금 및 지원금을 제공하는 동시에 세제 혜택 등의 각종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고령 근로자들 입장에서 재고용, 고용연장, 시간제 근무, 유연 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통해 단계적이며 점진적인 노동시장 출구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야흐로 근로자의 고령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이를 위한 대비책 마련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요, 기업과 개인 또한 고령사회 친화적 퇴직 모델을 개발하고 실행함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하리란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hih@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