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압박에 국악공연까지 취소…마른수건 쥐어짜는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악원은 이달 30일 공연할 예정이던 ‘세종조 사신연’을 취소했다. 매년 빼놓지 않은 송년 공연 ‘나눔’도 접었다. 올 하반기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예산 절감 지침에 맞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짠 자구책이다.

국악원 관계자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건비와 극장 유지비가 국악원 전체 예산의 60%에 달하다 보니 공연을 하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연말을 앞두고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돌입하면서 부처마다 비상이 걸렸다. 올 3분기까지 집행하지 않은 사업비의 30%를 줄이라는 지침과 함께 세부 할당 금액까지 떨어지면서 부처마다 피를 말리는 예산 절감에 나서고 있다.

기재부가 다급하게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은 올해 세수 부족 규모가 예상(8조원)을 넘어설 경우에 대비해 실탄을 최대한 아끼는 동시에 내년으로 넘어가는 불용예산을 늘림으로써 재정 운용의 탄력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세입 부족에 따른 중요 재정지출 중단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기재부는 이미 지난달 중순 각 부처 기획예산담당관을 소집, 우선 순위가 낮은 사업을 중심으로 세출 절감안을 마련해 보고할 것을 지시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2600억원을 줄이라는 통보를 받은 문체부는 예산 쥐어짜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불용처리해야 할 예산이 하반기 사업비의 60~70%에 이른다”고 말했다. 국립국장 직원들의 경우 출장비, 야근 식대를 이달부터 자비로 부담하기로 했다.

8500억원을 줄이라는 통보를 받은 교육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방교육청으로 내려보내는 교부금에 손을 댈 수 없어 자체 사업을 줄이는 외에 보유자산 매각 작업도 추진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의 수원농장 터를 2500억원에 팔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정 압박에 국악공연까지 취소…마른수건 쥐어짜는 정부

국토부 2조·교육부 8500억 할당 … “사업비 줄이기 죽을 맛”

도로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도 사업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방법으로 불용예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 완료 사업은 자금 배정을 신속히 끝내서 연말까지 마치되, 미개통 상태에서 내년으로 넘어가는 계속사업은 올해 집행할 예산을 이월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초 기획재정부가 요구한 불용예산 규모가 2조원이 넘지만 이를 맞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도 계속사업을 내년으로 미루는 방식으로 1700억원가량의 예산을 절감할 계획이다. 국가어항사업에 배정된 1617억원 가운데 1400억원만 올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내년으로 이월하는 등 자금 집행 계획을 새로 짜고 있다. 재해안전 항만 구축 사업도 당초 188억원 중 108억원만 올해 쓰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재부가 요청한 3000억원 규모의 불용예산을 맞춰야 한다. 농촌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은행에서 빌린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이자 상환을 내년으로 미루고 기본경비도 5% 줄이기로 했다. 국방부는 차기 전투기(FX)사업 선정이 부결되면서 생긴 여유 예산 3000억원 가운데 일부를 불용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체 예산사업이 없는 국무조정실과 공정거래위원회도 ‘쪼이기는’ 마찬가지다. 국무조정실은 정부출연금과 산하 연구기관에 지급하는 인건비 등을 줄여 99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업무추진비를 아끼는 방법으로 30억원 이상을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일종의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차원”이라며 “세입 여건이 나빠질 경우에 대비해 미리 자금의 우선순위를 정해두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사업비 10억원 이상 모든 사업은 재검토해서 자금 집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더구나 상반기 관리재정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인 46조원 적자를 기록, 올해 목표한 23조4000억원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하반기에만 23조원의 재정 흑자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는 세수 부족이 심각한 만큼 재정당국으로서는 미리 지출 우선순위를 정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선/정성택/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