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14 예산안, 고령시대 고민이 없다
다행히도 올해엔 태풍 피해가 없다. 태풍 ‘피토’가 북상하고 있지만 중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경제 면에서도 별다른 위기 없이 지나가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에는 각각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임기 첫해에 홍역을 치러야 했다. 새 정부 첫해인 올해는 다행히도 경제위기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들은 위기극복을 위해 재정을 대폭 확대하면서 임기를 시작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현 정부는 과거에 비해 유리한 여건에서 출범한 것이다.

새 정부 첫 번째 예산인 ‘2014년 예산안’과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이 국회에 제출됐다. 지루한 경기침체로 빠듯해진 세입여건 속에서 경기회복, 일자리 창출, 복지요구 등을 담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내년 한 해의 세입·세출 내역뿐 아니라 임기 5년간의 재정정책에 관한 새 정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 정부 임기 말년인 2017년까지 관리대상 재정수지를 적자로 남겨둔 부분이다. 2017년의 관리대상 재정수지 적자 7조4000억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4%에 불과해 사실상의 균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임기 내에 나라살림을 흑자로 만들어 놓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년의 관리대상 재정수지를 흑자로 만들어 놓고 나갔다. 당시의 재정정책 공과에 관한 논란은 둘째로 치더라도, 재정수지만큼은 소폭이나마 흑자로 전환시켜 다음 정부에 물려줬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년까지 재정수지를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계획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균형재정의 목표연도도 자신의 임기가 아닌 2013년, 즉 자신이 기약할 수 없는 차기 정부 첫해로 잡았을 뿐 아니라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도 끝내 만들지 않았다. 그 결과 새 정부에 굉장히 커다란 적자를 물려줬고 새 정부로 하여금 부랴부랴 세입추경을 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리고 새 정부 역시 임기 말년까지 재정수지를 흑자로 만들어 놓을 생각이 없음을 이번에 제출한 예산안을 통해 분명히 밝힌 셈이다. 진보정부가 흑자를, 보수정부가 적자를 낸다는 건 아이러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내내 국가부채가 너무 커지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들이 과연 이 사람들이 맞는가 하는 허탈한 생각마저 든다.

한국 사회는 2018년, 그러니까 차기정부 첫해부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나마 괜찮지만, 대략 이 시기부터 재정수지는 매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전망이다. 세금을 낼 젊은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복지지출은 점점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국회예산정책처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재정은 2030년대 중반 무렵 그리스 또는 스페인식 재정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때가 되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인구의 28%, 생산가능연령인구의 46%에 달한다. 그런 상황에서 세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기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노후 준비는 노인이 되기 전에 끝내야 하듯이 고령사회 대비 또한 고령사회 진입 이전에 끝내는 것이 순리다. 이런 의미에서 새 정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의 임기에 고령사회 대비를 위한 제도적 개편을 마무리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안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GDP 2.5% 정도의 재원을 추가 확보하는 세제개편을 2017년까지 마무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번 정부가 이렇게만 해두면 향후 50년간 고령화로 인한 재정위기는 피해갈 수 있다. 불행히도 이번 예산안에서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인식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 4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향후에라도 새 정부는 고령화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줬으면 한다. 국회도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예산안을 심의해야 한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kpark@ki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