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세계 경제 전망에 ‘저성장 쇼크’가 엄습하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경제가 동반 침체할 가능성이 높다는 암울한 시나리오가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중앙은행(Fe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서 동시다발로 나오고 있다. 2분기 이후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기대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충격이 불가피해졌다. 내년도 성장률이 정부 기대치인 4.0%에 현저히 못 미치는 3%대 중반에 머물 경우 이미 재정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박근혜 정부의 경제 운용에도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세계 경제 성장 이끌기엔 역부족

“우리는 그동안 경제 성장률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었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지난달 17~18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채권 매입 규모 축소(테이퍼링)를 연기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Fed는 이날 내놓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6월 발표한 2.3~2.6%에서 2.0~2.3%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3.0~3.5%에서 2.9~3.1%로 하향 조정했다.

버냉키 의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낙관적인 성장률 전망을 유지했던 이유로 “2008년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생산성이 저하된 것을 간과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으로는 경기를 일시적으로 부양할 수 있어도 생산성을 높일 수는 없다”고 했다. 경제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세금 인하, 규제 완화 등 구조개혁을 이끌어야 할 미국 정치권은 건강보험개혁법안(오바마케어)을 놓고 예산전쟁을 벌이고 있다. 재정정책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와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미국 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뜨릴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분석했다.

당장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유럽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 직후 “현재의 경기 회복세는 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불안정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3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포함해 경기 부양을 위해 모든 수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흥국들도 잇달아 하향

신흥국들의 사정은 더 나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침체됐을 때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출구전략 가동 등의 여파로 신흥국 경제 호조는 점차 막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ADB는 최근 아시아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6.0%로 낮췄다. 4월의 6.6%에서 0.6%포인트 줄인 것이다. ADB는 아시아의 성장동력인 중국의 수출 부진, 인도 제조업의 정체, 그리고 미국의 테이퍼링에 따른 아시아 금융시장 불안 등이 아시아 전체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당초 8.2%에서 7.6%로 낮췄다. 인도도 10년 만에 가장 낮은 4.7% 성장에 그칠 것으로 봤다.

IMF가 오는 8일 한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수정 경제 전망을 발표하기로 한 것도 이처럼 선진국과 신흥국의 성장 동력이 동시에 꺼져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달 19일 “일부 회복 신호도 있지만 세계 경제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유창재/베이징=김태완 특파원 yoocool@hankyung.com